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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1 13:21
 글쓴이 : 활연
조회 : 482  

슈빌Shoebill

   활연





  나는 기다림의 기다란 그림자를 찍는 화석의 표정이다.

  나는 파피루스 정원을 사색하는 고대 폐허이다. 낡은 유산을 허공에 뿌리며 만 년 습관을 떠올려 가끔 허공을 휘저을 따름.

  간혹 퉁방울 같은 눈물을 흘리나 슬퍼하지 않는다. 타조 성대를 빌려 우는 성가신 새의 유물을 유전하지도 않았다. 흔하게 몸을 드러내고 사생활을 볕에 늘어놓지도 않으며 신비주의에 유착한 고립을 즐기지도 않는다. 나는 공룡 뼈 무덤 숲을 뒷짐 지고 거뭇하게 걸어왔다. 공룡이 비척거릴 때 비척걸음을 단호히 거부하며 날았고 공룡 몸피로 여전히 새로 남았다.

  고립에서 선명했으며 신화로 읽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고립은 차라리 나를 새 이전의 새로 살게 했고 새 이후의 새로 날게 했다. 멸종기를 응시했으나 파피루스 숲에서 진화 밖의 진화를 음독했다.

  나는 태초의 신발이 먹이를 구하는 주걱이라는 사실을 공고히 했으며 민첩을 버렸으나 공기 거죽을 뜯어 박차고 날아올랐다. 나는 화석의 시간으로 걸어간 화신이다. 고독한 시대를 물가에 적시고 외로움이 흔드는 기척 사이를 거닌다.

  나는 단독자이며 상상 이전 구체적 실현이다. 멸종기에도 돌에 박힌 주검을 꺼내 허공에다 유전한 문자를 써왔다. 나는 괴기스러우나 새의 본류임을 기억한다. 나는 새에서 부화한 공룡이며 사자의 부활이다. 적신赤身으로 시간의 유동을 막고 벌거숭이 평원을 누리고 또 섬기며 왔다.

  나는 고독한 방랑자였다. 신비를 입었으나 입술에 깨문 신발을 버리지 않았으며 형벌 같은 무게를 업고 관념의 비슬을 떨구듯 날았다.

  나는 신화다
  아니다, 나는 요지를 탐험하는 구도자다
  아니다, 나는 치명적인 거룩함이다
  아니다, 나는 멸종기 이후 가장 오래된 유골이다
  아니다, 나는 날 수 없는 사실을 부정하며 진화한 발이다
  아니다, 나는 거대한 날갯죽지로 사바나를 건너가는 고독한 사공이다
  아니다, 나는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 시원에서 뛰놀던 옛적의 그림자다
  아니다, 나는 넓적부리 종결자이며 누런 새이며  새란 관념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전형이다
  아니다, 나는 새의 요물.

  고대를 읽고 탐닉한 사색가이며 오지 물가를 거니는 사라진 시대 날개 자국이다. 만 년 늦게 진화하는 느린 시간의 지문이다. 부정을 부정하는 박제이며 박제된 날개가 허공을 희롱한 전범이다. 도린곁 마법을 다시 쓰는 초월이다. 나는 유기된 신비이다.

  아니다,

  나는 물색을 뜯어 은빛 물고기를 꺼내는 외로운 사냥꾼이다. 시대를 뒷전으로 천천히 눕힌 부서진 시간의 배후다. 빠른 시대가 버린 기체機體다.



  * 넓적부리황새: 평균 몸길이가 2m가 넘고, 부리가 넓고 길이도 30cm 이상 된다. 9,000 여종 되는 조류 중 가장 큰 발을 가지고 있으며, 20cm 정도의 발톱에 몸무게를 분산시켜 갈대 위를 걸어다닌 수 있어 주로 늪지대에 서식한다. 큰 부리를 이용하여 죽은 물고기, 개구리, 거북이나 작은 포유류나 새들 등을 먹는 육식성 조류이며, 단독 또는 짝을 이루어 생활한다. 원산지는 중부아프리카이며, 현재 서식지의 파괴로 멸종 위기에 있는 희귀 조류이기도 하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4-14 21:03:31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서피랑 18-04-11 14:07
 
슈빌을 검색해보니
신비한 모습을 한 조류네요.

마치 새의 눈, 새의 영혼이
들려주는 것 같은
이 단단한 서술을
누가 흉내낼 수 있을지,

멋진 시.
잘 감상했습니다.
샤프림 18-04-11 21:33
 
활연 시인님 시를 대할때면
저는 숙제를 하는 기분입니다
난이도 높은 숙제에
문제를 푸느라 밤새 끙끙거리는 학생이 됩니다 ㅎㅎ

요즘은 창방이 환해져서 좋습니다

자주자주 숙제를 주세요 

감사합니다
동피랑 18-04-12 06:24
 
기술 발전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큰 변화 과정을 걷고 있죠.
어쩌면 그 때문에 통째 지구와 인류 존립을 염려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 하나만으로도 당장 산업이나 국방 할 것 없이 실로 감당하기 힘든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편의 제공이 진화나 발전의 목적일 텐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는 물론이고 생태계 파괴와 인간성 상실을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슈빌에 대해 내린 정의를 읽으며 삶의 궁극적 가치를 떠올렸습니다.
화학무기가 거론되더니 이내 멋있고 새롭고 스마트한 미사일을 날리면 세상은 정의롭고 어린 생명들도 안전하게 되는 것인지....
이런 관점에서 슈빌의 구두주걱 한 마디가 촌철살인이군요.

봄날도 가려고 하는 마당에 신통방통한 새를 풀어두셨네요.
뭐든지 새처럼 가비얍게 건너다니시길~^^
활연 18-04-12 21:15
 
시는 아무래도 간결함이 미덕인데,
설왕설래가 참 많은 글이지요. 영등할매가
심술을 부려도 봄은 봄인가 봅니다.
슈빌이 하루종일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아마도
시를 쓰는 중?
 
세 분, 꽃비 쏟아지는 환한 봄길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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