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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3 09:55
 글쓴이 : 동피랑
조회 : 259  


   蚊科系列 스치는

 


이십오시 형광등 불빛은 환한데

손님은 안 오고 냉장고만 윙윙거린다

깊은 밤은 무겁고 조용해서 가라앉았던 기억이

단물 밥풀처럼 한 알 한 알 떠오른다

나는 하릴없이 양손을 주머니 찔러 넣고

좁은 바닥을 왕복하다 옛날로 돌아가자

먼저 설익은 내 유년에 가신 어머니가

동정이 반듯하게 달린 저고리를 입고

나를 보시며 웃는다

이어서 아이들이 양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재잘재잘 동피랑 까꾸막을 오른다

그러더니 땟국물 까만 교복에 높을 고(高)

글자 박힌 모자 쓴 동창들이 책가방을 들고

교문에서 선도부들과 인사를 한다

그런 후 청바지 차림의 내가 캠퍼스 도서관에 앉기도 무섭게

최루탄과 돌멩이와 몽둥이와 화염병이 날아다닌다

이때 우리가 스크럼을 짜고 앞으로 나아가며 아침이슬을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나는 어느새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예쁜 딸들이 내 곁에 와 귀여운 짓을 한다

이렇게 하나둘 기억의 단물이 빠져나가고

나는 문득 흰 귀밑머리 아르바이트임을 깨닫는다

그래, 축시(丑時)쯤 되면 술 취한 중년 여성이 출입문을 화들짝 열고 들어와

아잣씨, 꽁나물 한 쪼매이 하고 에쎄체인지 한 갑 쭈세요 하겠지

그리고 또 희붐한 새벽이면 청소차 미화원들이 찾아와

헐직한 박카스 한 병씩 홀짝홀짝 마시고 갈 것이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모기 한 마리 계산대 난간에 앉는다

꽁지를 연실 씰룩대다 공중으로 날더니

갑자기 엥~ 하고 내 얼굴 앞을 지나간다

피 맛을 보고 싶은 저 배고픈 드라큘라

오늘 밤 내 몸에 빨대를 꽂겠다는 거다

날 밝으면 콩나물국이 여인의 숙취를 몰아내듯

박카스가 미화원 엔도르핀이 되듯

나도 돈 받고 세상과 피를 나누는 시급 백작

내 몸 어딘가 모기가 물어 자그만 무덤이 부풀면

타인의 상처라도 느끼겠는데

유독 피로 물든 오월의 밤

온몸 소름 돋은 장미가 뜨거운 주먹들을 편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5-17 15:47:10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한뉘 18-05-13 10:53
 
속절없이 지난 시간들이
동피랑 시인님의 시에
고스란히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겪었을 상황들
그 지난 시간에 수없이 등장했건만
정작 선명한 그림은 몇 컷 안되네요
스치듯 걸어가는 앞서간 그림자를 이제는
쫓고 있을뿐이구요^^
단문의 시 속
장문의 시선을 줍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동피랑 시인님^^
푸르른 5월 그대로 간직되길 소망합니다
고나plm 18-05-13 10:58
 
좀 길지만
지루하지 않아 읽기 편하군요
깃발처럼
오월하늘 펄럭이는 좋은 시
잘 감상하였읍니다
샤프림 18-05-14 09:35
 
동피랑 시인님의 시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시 감상하게 해주세요
창방의 문을 열면
반짝반짝 빛나던 시인님의 등불같은 시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보내세요
활연 18-05-14 16:25
 
시를 읽는데
온몸에 소름이.

형, 보고 싶네요.
동피랑 18-05-15 02:31
 
그 추운 날 해풍을 맞으며 하얗게 피었던 매화가 제법 매실답게 자꾸 팽창하고 있습니다.
마침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일들이 전개되고 있어 국민 대다수가 머지않아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졸글이나마 종종 올려 문우님들과 어울리는 게 도리겠으나 요즘은 제 육신 하나 퇴고하는 일도 버겁군요.
편하게 많이 먹고 많이 자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어쩌다 한 번씩은 이번처럼 넋두리라도 쓸 수 있겠지요.
한늬님, 고나plm님, 샤프림님, 그리고 저보다 수학 문제를 잘 풀어도 얄밉지 않은 활연님 고맙기도 하고 매우 보고 시포요.
모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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