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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2 14:43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369  

시와 산문은 다른 뇌에서 쓰여진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시를 쓰는 뇌를 자주 사용할 때는 편지가 쓰여지지 않는다.

편지 쓰는 뇌를 자주 사용할 때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산문은 사람들이 내어놓은 길로 돌아돌아 가는데

시는 비행기나 배처럼, 혹은 새들처럼 지름길로 직행한다는 생각이 든다.

산문을 쓰는 뇌로 시를 쓰려고 하면 시가 너무 어렵다

그러나 시를 쓰는 뇌는 내 마음대로 아무 때나 작동 되지 않는다.

스위치를 꼭 눌러야 하는 기계처럼 삶에 눌리고 밟힐 때 나도 모르게

작동 되는 것 같다. 산문의 뇌로 쓴 시는 읽어보면 알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들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산문의 뇌로 쓴 시는

무겁고, 좌뇌가 좋아하는 단어와 논리로 가득차서 여장을 한 남자

처럼 보이는 것이다. 요즘 시들의 경향이 시의 뇌가 아닌 산문의 뇌에서

나온 것 같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가져본다.

산문성이 농후한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빵모자 눌러 쓰고 노란 서류봉투

겨드랑이에 끼고 스카프 칭칭 감고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왜 북한 기쁨조들의 공연이 떠오르는 것일까? 정말 천개의 오르골처럼

똑 같은 포즈로 다리를 찢고 있는데도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저항이란 영혼의 노른자 같은 것이다. 자유의지를 영혼의 또 다른 말로

쓸 때가 있다.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저항이 깃들지 않는 예술은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다면 억지로 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무례하고 시건방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나 사유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독존자로서 천상천하를 읽고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령으로

들린다. 나의 관점을 쓰는 것이다. 남의 관점을 내가 대필할 것이 아니라

내게 신이 맡긴 관점에 처절하게 충실하는 것이다. 인간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시인의 덕목인 것처럼 생각하며 시인에게 자꾸

가면을 씌우지 말라는 말이다. 교회 예수쟁이들의 선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선과 다르고, 절에 중들의 선이 또한 다른 선과 다르듯, 시의 선은

또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용하는 뇌가 다른데 어떻게 같은 징후를 보이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시인들이 불알 딴 내시처럼 한결 같이 얌전하고 곱상한 것은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대주의가 전통적인 생존 방식이여서 걸출한 미친놈이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여서 시인에게서 시의 호르몬이 흐르는 것을 꺼려 하는

것 같다. 남성에게 남성 호르몬이 흐르고 여성에게 여성 호르몬이 흐르듯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의 호르몬이 흘러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호르몬이 자기가 자신

이고자 하는 의지에 관여한다고 믿는다.

 

시는 뭔가를 꽁꽁 감추고 언어의 숨박꼭질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야 좋은 시라고 믿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아니다. 시는 빛이 어둠을 건너는 방식으로 쓰여지는, 생에의 직시다.

대상이 가진 시빗거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고, 시비를 걸어보는 작업이다.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시는 말들어진 것이다.

오히려 산문이 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위해 시는 만들어진 것이다.

오른 발을 내밀어야 되는데 왼발을 내밀면 총살 당하는 분위기에서는

절대로 쓰여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지식이 없어 다른 사람과 시에 대해 어떤 담론도 주고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시에 매달려 살면서 나 자신과 가끔 어려운 전문 용어나

어떤 이름 긴 사람들의 생각을 빌지 않고 시에 대해 토론 할 때는 있다.

지금처럼이다.

 


셀레김정선 18-02-13 03:44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시인님의 글이 올라오기를 많이 기다려서 그런지 오늘은 더욱 반갑습니다
시와 산문에 대한 생각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공덕수시인님의 귀한 토론 잘 감상했습니다
저는 비록 외국에 거주하는 이유로 별 다름없겠지만는
구정연휴에는 시인님께서도 휴식하시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공덕수 18-02-13 21:49
 
감사합니다. 김정선 선생님. 명절 잘 보내시고요.

멀리 계시는군요. 더욱 고향 생각 깊어질 명절이 다가오는군요.
외로움 많이 타시지 마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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