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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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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4 19:38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205  

계를 들지 않은 것이 미안해서 가위와 집게를 담을 수 있는 통 두개랑 신발을 신고 들어 가세요 라고 쓴

팻말 한 개를 사들고 출근 했다. 남편 핑계를 댄 것도 맘에 걸려 마음이 불편 했다.  사장 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나에게 잘해 주었다. 사실은 나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책감으로 언니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종일 비가 내렸다. 시를 보내고 나니 한 번 죽은 사람처럼 모든 시간이 막연해졌다. 나는 그 시집이 무슨 출판사

에서 나오게 되는지 모른다. 맞춤법 검사도 하지 못하고 보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전화였다면, 난 그냥 시집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와서 무슨 욕심이 있어 시집 따위를 내겠는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라면

믿을 수 있었다.  아름답고 착하고 겸손하고 정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라곤 전화 목소리 뿐인데

그녀가 불러주던 목포의 눈물을 녹음 해두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한번 뵙고 싶다는 간절한 꿈도 있지만

대체로 인간 관계를 잘 못하는 내가 좋지 못한 느낌을 주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지금껏 내가 쓴 시를

다시 읽어보니 정말 한심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럽다. 너무나 장황한 수식과 묘사에 매달려 있었고

솔직하지 못하고, 쿨하지 못했으며 영혼을 드러내기보다는 포장 한 시들이 많았다. 내 시에 있는 모순과 결핍들을

한데 묶어 보낸 느낌마저 든다. 무려 백이십편의 시를 보내며  필요한 편수만큼 좀 골라 달라고 부탁 드렸는데

내가 무어라고 남의 시를 함부로 고르고 그러겠어요? 쓰느라고 고생했어요. 일단 보내주신데로 보내 놨으니

아무 걱정말고 일에 전념 하세요. 라는 답을 받았다.  그 시인님은 나의 시를 골라 주셔도 되는 분인데 겸손하고

인간적인 분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말 영혼의 일기가 될 수 있는 시를 쓰야겠다는 결심이 서기도 한다. 내가

시를 좀 봐달라고 부탁한 시인님 한 분은 그 뒤로 잠수를 타셨다.  내가 무슨 불쾌한 일을 그에게 한 것일까?

그런 부탁 자체가 나쁜 것일까?  난 그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의논한 것일 뿐인데 주변머리 없고, 눈치 없는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오후반 일은 여섯시 부터 시작하는 호프집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주인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내일 전화를 해준다고 했는데 백화점 메니저를 했다는 여자가 일을 그만 두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전반 일을 마치고 집에와서 좀 쉬고 나가면 집도 가깝고 좋을 것 같았다.

 

그리움이 골수로 썩어들어가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하잘것 없는 사람인지, 미운 사람인지 잘 알면서

내 안에서 파내어지지 않는 시여! 한 순간이라도 너를 만났기 때문에

나는 부단히도 아름다워야 한다. 순정하고 따뜻하고 순하고 예쁜 사람으로

살거나 죽어야 한다. 무정은 그대의 몫이고, 사랑은 나의 몫이다.

다행이지 않은가? 바다로 가면 바다로 출렁이고, 산을 가면 산으로 서있고

길을 가면 길로 함께 하던, 너 내안의 편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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