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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6 00:34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196  

호프집은 좋다. 아들이 민중당 시의원에 출마 했다는 호프집 여사장은 내가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걱정했다.

사실 식당 일에 비하면 노는 것인데도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쉬라고만 한다. 그래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데

이골이 난 나는 손에서 행주를 놓지 못한다. 계속 비가 그치지 않는데 남편이 음주 운전을 할까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가 큰 길가 횡단보도에 서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확행이라고 했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던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했던가? 어제는 크고 확실한 불행이였던 그가 오늘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내게 우산을 받혀 주었다.

 

오후반 호프집 부근에는 시립 도서관이 있다.  3시쯤 오전 일을 마치면 그곳에서 6시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노안 때문에 책을 읽으려면 돋보기를 꼭 챙겨야 한다. 시집 한 권을 내었으니 이제 새로 태어나서 시를 쓰는 것이다.

술을 멀리하고 맑은 정신으로 시작해야겠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잠도 줄일 수 있고, 계획을 하고 그것을 실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새삼 왜 나는 좋은 시민이 되려고 하는 것인가?  좋은 엄마는 내생의 꿈으로 접어 두기로 하지 않았었나?

왜 나는 좀 더 강렬하고 도발적인 시를 쓰지 못했던가? 그저그런 예쁘고 얌전한 시를 쓰려고 그렇게 미친년처럼  살았던가?

이젠 한 동안 쓰지 말고 읽어야 겠다. 닥치는데로 뭐든 읽어야 겠다. 연료가 떨어진 것 같다. 영혼을 충전하고 주유 해야겠다.

눈이 불편하다고 한 동안 아예 책을 읽지 않고 살았다. 이젠 읽어야 겠다. 그리고 국어 사전을 펴놓고 나오는 단어들을 모두

시로 쓰보아야겠다. ㄱ 은 다 쓰고 죽을까? 아니다 무작위로 어느 단어를 선택해서 제목을 삼는 것이 좋겠다.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를 쓰면서 사는 사람이고 시를 쓰면서 죽어가는 사람이다. 시 이외의 아무것도, 아무도 아닌 사람이다.

시를 쓸 수 있다면 세상 그 누구여도 상관 없고, 그 누구로 보여지고 여겨져도 상관 없다. 먹물을 머금고 우뚝 서는 붓처럼

시의 의지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다.  좋은 시를 쓰지 말자. 나의 시를 쓰자. 이것 이외엔 아무것도 걱정도 고민도 하지 말자.

구도자가 끝없이 길을 걷듯 시를 쓰자. 아무곳으로도 돌아가지 말고 길 위에서 죽자. 백골을 하얗게 드러내며 길을 밝히자.

 

모르겠다. 늘 결심은 장황하다. 술을 끊어야 무엇이라도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셀레김정선 18-04-06 03:56
 
큰 길가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린 시인님의 남편때문에 제 입가에도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흐릅니다
작지만 큰 행복이 아니라 정말 커다랗게 큰 행복입니다
시집을 내신다니 대박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비록 술을 못마시지만 살면서 한 두잔의 술은 필요한것 같습니다
좋은 시를 향한 공덕수시인님의 결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늘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공덕수 18-04-06 07:35
 
감사합니다. 셀레 선생님!  글쓰는 일에 맥이 빠져 갔는데 선생님의 응원 덕분에 풀어지는 피를 다시 모아 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더니, 저를 응원해주고 칭찬해주시는 분께 꼭 멋진 고래의 춤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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