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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7 06:01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170  

이틀째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술에 길들여진 잠이 곧 도살장으로 끌고 갈 줄을 모르는 소처럼

주인의 손등을 핥고 있는 것 같다.

 

오전반을 마치고

오후반을 가기 전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오르막길 옆에 자전거를 세워 두려고 갔는데

언덕에 동백이 마치 선채로 피를 하혈하듯 동백이 흥건 했다.

벚꽃이 비늘처럼 말라 붙어 있고, 여윈 대들이 밀원을 이룬

대숲이 이리 저리 바람을 몰고 있었다.  꼬리가 아주 짧고

살이 찐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아무 생각도 없는 나를 피해

숲속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가끔 내 머릿속은 텅비었지만

책을 읽는 것 보다 텅 빈 머릿속을 계속 비워두고 계절과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일이 내게 더 충만을 줄 때가 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를 피해 달아났던 검은 고양이가

금빛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동그랗게 만들고 앉아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다. 가방속에 뭐 던져 줄것이라도 있나 싶어

생각해보았지만 고양이가 먹을만한 것은 없었다. 딱히 읽을 책도

없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져서

이층에 있는 열람실로 향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도서관의

책상과 의자는 거의 다 차 있었다.  나는 도서관 직원에게

돋보기 안경을 빌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서관 직원이

사십대?  하면서 물었다. 내심 사십대의 도수를 권하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오십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오십대 돋보기 안경이

눈앞이 뿌옇게 보이면서 울렁증이 느껴졌다.

"아! 아직 눈은 사십대인가봐요"

사십대용 돋보기 안경을 건네주면서 도서관 직원이 웃었다.

그것을 쓴채로 책장을 향해 걸어가니까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책이나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을 책꽂이 뒤의 구석에서

읽다가 출근을 할 생각이였다. 히말라야 등반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글이 물반 고기반인 것 같은 책을 막 집으려고 하는데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는 질문을 재차, 좀 집요하다

싶을만큼 계속 하셨다. 오후반 출근 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볼일 좀

본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서

"돈을 모아야 된다"는 말이  서른 두번 되풀이 되었다.

나는 우리들에게 돈이 모이지 않는 이유를,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화목하다고 믿으시듯, 내게 돌리는 것이 이 통화의 목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돈을 모아야 된다. 라는 말이 몇번이나 되풀이

되는지 헤아리면서 내게 일어나는 분노를 분산 시키기로 했다.

우리가 어렵게 서로 가라앉힌 문제를 집어들고 흔드시는 어머니 덕분에

우린 다시 냉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서른 두번 내게 되풀이 했던

대사를 그에게 다시 몇 번 되풀이 했는지 알길이 없으나 퇴근 해오는 그는

어머니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했냐고 씩씩 거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정전이 되는 것 같아지더니 잠이 쏟아졌다. 그길로 잤다.

다섯시 29분까지 자고,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출근 했다.

그리고 퇴근을 해서 각자 방에서 서로의 안부를 모른다.

 

호프집 사장이 친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남편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이년째 산송장이라는 호프집 사장의 친구는

오십 다섯의 나이에 엄청난 남자랑 재혼을 해서

텔레비젼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살 것 같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남편과 여행을 다니며 전원 생활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청소를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될만큼 넓은 집에서 빨간 외제차를 선물로 받고 산다는 것이다.

왜 내 친구들은 다들 그리도 지질이도 가난하고 어렵기만 한데

식당 사장네 친구들은 온통 백마탄 늙은 왕자들만 만나는지

일면식도 없는 사장네 친구에게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 빌어먹을 년이 친구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병원에

누워 있다는데 그런 대 저택에 초대를 해서 염장을 지르는 저의가 뭔지

부터 역정이 났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을 서른 두번이나 되풀이 해서

해대는, 자식에게 돈 한 푼 남겨 준 것 없는 시어머니의 잔소리나 듣다,

그 시어머니가 휘저어 놓아서 얼음 가루가 푸석푸석 떨어지는 집구석에서

탈출하듯 출근한 나의 박복에 삶에 대한 예기가 푹 꺽이는 것 같았다.

결국 그런건가? 남자 잘만나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절대 진리인가?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제가 당신의 아들보다 두 배 세배로 노동하고 있는데

제가 절약을 하느라 얼마나 더 몰골로 다녀야 우리집 경제가 나아질까요?

계 같은 것 넣지 말고 달달이 버는 돈 당신께 맡기라고요? 당신 아들이

맡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당신 아들의 어머니께서요? 왜그러세요? 왜

인격을 존중 받는 일이 지겨우십니까? 인터넷 미즈넷 같은데서 나오는 고부갈등

시리즈에 우리 이야기도 한 편 올리고 싶으십니까? 넌 또 언제까지 묵언수행 할꺼니?

그냥 대답하기 싫어서 백번 채우실 때까지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늙으막에 백마탄 늙은 왕자를 만난 그 여자는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뀌고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남편이 씻어주는 양말을 신을까?

아침에 뭐라도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끄글끄글 커피콩 가는 소리가 들리고

한동안 커피 끓는 소리가 들리고, 그 남편이 끓인 우유에 넣은 커피를 가져 올까?

그래 진리 맞다. 여자는 남자 잘 만나야 한다.  그녀에게 잘, 잘인 것과 내게 잘 인것은

다르지만, 여자가 남자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진리 맞다.  그러니까 어머니,

사년이 넘도록 둘이서 변변한 적금 하나 유지하지 못하고 살아도 저에게 당신 아들이

잘 만난 사람이라고 믿으니까, 당신 아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를 저에게 해결하라고

하시지 말라고요. 돈에 팔려온 베트남 어린 신부처럼 돈 있다고 비위맞추고 눈치보고

기도 펴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돈 못번다고 당신 아들 구박하면서 큰소리 치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니까, 어머니 제발 제 행복을 방해하지 마세요. 우리의 가난을 위해서

울지 마시라고요, 제발요. 저는 남자가 번 돈을 제가 펑펑 쓰는 일로 제 삶이 대견하게

여겨지는 시시한 여자가 아니니까, 우리들의 행복을 좀 내버려두세요.

 

돌아오는 길의 오르막길이 참 수월했다.

내 마음속의 대사가 격해지는만큼 패달을 격렬하게 밟아, 기분 좋은 날보다 자전거가

잘 나갔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 그가 자전거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주었는데

자전거 바퀴가 워낙 낡아서 그런지 하루만에 배가 푹 꺼진 것이다. 힘껏 펌프질을 하며

" 어두우니까 인도로만 타고 다녀! 꼭 그런 술 파는 집에 다녀야 것나?"

"호프집이 뭔 술 파는 집이야? 설겆이 해주고 음식 갖다 주는건데.

시간이 좋쟎아?  책도 읽을 수 있고, 햇빛도 볼 수 있고"

"그래도 너무 늦게 마치쟎어? 미안하다. 나도 알바자리 알아보고 있다."

자긍심이 푹 꺼져버린 내게도 바람을 넣어주는듯 했던 우리들의 대화들이

하루만에 반이나 져버린 벚꽃처럼 씁쓸하게 길바닥에 말라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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