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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7 15:24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219  

호프집 사장이 점심을 사주겠다고 해서 나갔다.

그녀는 소탈하고 털털하고 좋은 사람 같았다.

합천 삼가에는 한우가 유명하다.

나는 거의 이십년만에 그곳의 한우를 먹을 수 있었다.

일을 할 때는 손님들이 남기는 땅콩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공이로 찧어서 땅콩 가루로 만들어 쓰는 사람이

십만원이 넘는 돈을 흔쾌히 썼다.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친 소를 위한다며 소주를 마시자고 했는데

또한 흔쾌히 웃으며 잔을 부딪혀 주었다.

벗꽃은 절정을 지난 미모처럼 한 풀 시들어 더

원숙미가 넘치는 미모 같았다. 꽃이 늦은 나무들을

꽃보다 싱그러운 연두를 공중에 뿌려대며 바람의 손길에

무쳐지는 봄나물처럼 코를 벌렁이게 했다. 그리고는

대평의 벚꽃나무 꽃터널을 지나 진양호가 보이는 찻집에서

대추차를 마셨다. 나는 달달한 원두 커피를 주문했는데

대부분 설탕이라면 질급하는 우아한 사람들만 보았는지

나의 달달한 이라는 주문에 두 사람다 웃음을 터뜨렸다.

오전반 언니는 내가 하는 것이 이쁘다고 백화점에서 내가

머리에 찌를 핀을 사두었다고 하고, 오후반 언니는 아무나

잘 끼워주지 않는데 나를 그녀들끼리의 오찬에 끼워준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너무 행복해져서 아무 근심이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저명한 여류 시인님은 내 시집을 내주시겠다 하고

난 아무래도 남자복이라곤 손톱의 때만큼도 없는데 여자들이

내게 복이 되어주나보다 싶었다. 다행이다. 어느쪽이면 어떠랴?

이 나이에 나의 어떤점이 나쁘다하면 바꾸기가 쉽겠는가?

어쩌든가 내가 이쁘다 좋다하는 사람이 나도 이쁘고 나도 좋다.

 

보험을 들었다.내가 죽으면 8000만원이 나온다는 생명 보험이다.

암이다 무슨 병이다 내게 일어날 일보다 내가 죽고 나서 아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보험료를 염두에 둔 보험 이였다. 어차피 죽을 것이다.

죽음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일만큼 가볍고 아무렇지도 않으며

뜻하지 않은 아름다운 일일수도 있다. 지금까지 내 삶에 일어난

결정적인 변화들, 태아로 있다 태어나고, 기고 걷고 말하고, 자라고,

초경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고,  무엇이 어떻게

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고, 나는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으며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울었거나 아팠거나, 죽을 것 같아도

어떤 좋지 않은 기분보다 강한 생명력이 나를 이끌고 나를 쓰다듬고

나를 일으켜 세워, 그 시간을 조금만 비껴나면 살아 있는 일은 그 모든

순간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챤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죽음 역시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성장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이미 지나왔던 차원에 남겨두고 지금껏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것이다. 살아서, 이 세계에 있을 때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엄마였지만, 죽어서, 달려가서 밥 한그릇 차려 줄 수 없을때는 작은 돈이라도

돈으로 떼우고 싶은 것이다. 이상하게 나는 이제부터 조끔씩 죽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잘 죽겠다는 생각이 자주든다.

어차피 죽는 것이니 삶도 일종의 자살이다.

유익하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에 살았던 까닭으로 세상이 손톰만큼이라도 나빠진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수정하고, 누구에게라도 내가 왔다간 기억이 좋은 것이였으면 졿겠다.

특히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느낄수 있는 일회용 손난로 같은 것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낮 사장, 밤 사장, 다 열심히 일하자. 나는 소고기를 사줄 돈도, 짜장면 값보다 더 비싼

차를 살 돈도 없다. 내가 지갑속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마음 뿐이다. 잘하자.

열심히 내 손끝에 영혼이, 행주에서 베여나오는 물처럼 묻어 나오게 열심히,

 

일단은 잠을 자두자.

 


셀레김정선 18-04-07 19:29
 
지갑속에서 꺼낼게 마음뿐인것도 쉽지않은 세상입니다
뭐든지 받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 마음이라도 줄수있는것은
또 얼마나 값진것일까요
이곳은 정말 날씨가 좋은 봄날입니다
이런날에 공덕수시인님의 기분 좋은글을 읽을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늘 오늘처럼 사랑 받으시고 기분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공덕수 18-04-08 09:35
 
감사 합니다.
셀레 선생님! 이런 저런 누추한 고백들을 글이라고 마음에 담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아주 먼곳에 사신다니 유리병 속에 넣어 바다에 던진 편지가 지구 저편 바닷가에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오늘 이곳 날씨는 새침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서피랑 18-04-08 16:38
 
행주에서 배여나오는 물처럼/ 내 손끝에 영혼이..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저도 힘을 얻습니다. ^^
저번에 언듯 말씀하신 좋은 소식이 시집 발간인가 봅니다..
저도 무척 기대됩니다..
늘 화이팅 하시길..,^^
공덕수 18-04-09 05:48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엮으려고 시를 모아보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시라면 제목의 첫획 조차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참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부끄럽습니다.
들에서 오래 놀다보니 자신감이 없었던지
잘 쓰는 것처럼 보이려고 용 쓴 시들이
참 많았습니다.

서피랑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새로, 또한 진정으로 참된 시를 쓸 수 있게
많은 도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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