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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8 09:09
 글쓴이 : 공덕수
조회 : 109  

아침에 일어나면 편도가 붓는 날이 며칠째다.

어제는 오전반 일하는 곳으로 남편이 일 하러 가다말고

목감기 약을 사왔다.

난이가 죽은 이후 한편 홀가분하고 한편 의욕이 없어졌다.

숨을 컥컥 대면서 씹어주는 음식도 먹지 못하는 난이를

지켜보는 일이 힘들었는데, 그 빈자리를 보는 일도 그에 못지 않다.

요즘엔 쇼팽의 야상곡을 1번부터 번호 별로 듣다 잠이 든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도 번호별로 듣다 잠이 든다.

밤 열두시에 마치고 와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책을 읽는 일과

음악을 듣는 일인데 공부하는 아이들은 둘을 함께 하던데 나는

둘을 함께 하면 책은 읽게 되는데 음악은 공중에 흩어버린 방귀나

트림처럼 잃게 된다. 그래서 잡다한 생각을 일으키는 책을 접고

흐르는 선율에 모든 감각과 의지를 흘려 보낸다. 바하와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조수미의 목수리로 들어도 좋고 바이올린으로 들어도 최고다. 음악에 관한

해설이나 주변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음악 용어들은

너무 어렵다. 쇼팽의 야상곡은 2번만 귀에 익고 모두 새롭다. 다리를 접어 앉아서

명상하는 자세로 들을 때도 있고,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들을 때도 있다.

 

오후반 언니가 내 띠를 물었다. 그녀는 동네의 보살에게 돈을 주고 기도를 의뢰하거나

등을 달거나 촛불을 켜는 불교 신자다. 아마도 자신과 나의 띠 궁합이 맞는지 동네 보살에게

물어볼 모양이다. 나는 잘릴까봐 불안했다. 내가 알기로 범띠와 잔나비띠는 상충살이 낀

띠로 알고 있다. 나는 삼천년전의 과학에 콧방귀를 뀌지만 이번주 토요일에도 지리산

어느 암자에가서 시의원 출마한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러 갈거라는 열렬한 불교 신자인

그녀에겐 불변의 진리로 통할 것이다. 나는 잘리기 싫어 문자를 보냈다.

"언니 삼천년전에 믿었던 것 중 하나가 옥토끼가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

였는데, 달에는 개미 한마리 살고 있지 않다고 밝혀졌습니다. 삼천년 전의 과학을 21세기에

사는 사람들이 극복할 수 없다면 삼천년 동안 인간의 삶은 너무 헛되지 않을까요? 보살님에게

물어보나 마나 범띠와 잔나비 띠는 상충살이 있어 별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 복채는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어제는 술에 취하면 입이 비뚫어지고 그 비뚫어진 입술을 혀로 핥는 언니가 왔다. 나는 함께

술을 마시기 싫었고, 더우기 바람둥이 그녀의 남자 친구의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유머에 우스운체 하며 깔깔 웃어주는 것이 싫어서 불러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술에 취하면

"사장! 나는 거짓말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사장 니 밖에 없다"하고 말하는데, 사장! 하고 부를 때

그 뒷말들이 듣기 싫어서, 남편이 데릴러 온다는 핑계로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러면서 사장 눈치가

보였다. 띠궁합도 좋지 않다는데 동네 보살의 동생인 그녀를 붙들고 이러쿵 저러쿵 하소연을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 내도록 서글펐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잘릴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다니,

어떤 나이와 또 어떤 나이가 잘 맞지 않다는 몇 천년 전의 추측 내지는 토템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손님이 없으면, 그것이 내가 원숭이 띠여서 그런 것인가 또 사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그녀의 어처구니 없는 신앙에 나까지 휘둘려야 한다니, 불교를 믿는다는 그녀가

동자신이나 장군신 같은 잡신들을 섬기는 보살님들을 목사나 신부님처럼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책에서 읽은 불교는 덮어놓고 무엇을 믿는 일이 아니라 닥치는데로 의심하는

치열하게 의심하고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처절한 철학 행위였다. 도대체 자기 존재의 밑바닥을 파고

드는 일에 삼신 할머니가 왜 끼여들어야 하는지 나는 잘 알 수가 없다. 신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아무도 입산수도할 이유가 없어지는 종교가 불교라는 생각을 나는 왜 하는 것일까? 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내 잘못은 다시 태어나서라도 내가 갚고, 내 선업은 다시 태어나서라도 내가 받는 철저한 인과율은 종교라기

보다는 수학이나 과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나는 왜 하는 것일까? 어떤 신이 나의 삶을 응원해줄거라는

믿음은 유신론이며 거의 자아혁명과 같은 불교의 본질과 무관한 것이라 여기는 것은 나의 무지에 기인하는

오해일까? 부처님은 그 아래 머리 깍고 앉은 사람들의 스승이지 신이 아니라는 생각, 부처님은 그들을 엎드리게

해서 절을 받을 일도 없고, 외려 우리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의미를 두고 전전긍긍할만한 아무런

깊은 뜻도 없는 일들임을 스스로 발견하고 편히들 살라고 말해주려고 어느 절에나 앉아 계신듯하다.

괜히  종이들에 부질 없는 불들을 피울 것이 아니라, 주린 목숨, 서러운 목숨 안에 불을 켜듯, 배를 채워주고

마음을  밝혀 주는 일이 만약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있을 세상을 밝혀 놓고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 고양이들 배가 고파서 쓰레기 봉투 찢는다고 쥐약 놓고 다니는 인간들이 절에가서 돈 등을 달고

비는 것은 이 생의 요행과 복이다. 결국 그들의 신앙의 대상은 자기 자신 뿐인 것이다. 왜 이 생을 바로 살아

내 생을 고치겠다고 마음 먹은 자들이 저 생의 업보로 받은 사주를 그대로 끼워맞춰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을

무슨 띠라 하여 배척하는가? 더우기 사주는 불료와 아부 상관 없는 유교의 경전에 나오는 일부분이 아니였던가?

만약, 전생의 악업을 따라 배정 받은 것이 이생의 사주라면 오히려 상극이거나 상충인 인연들에게 더

따뜻하고 착하게 하여 내 생에는 좋은 인연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신을 믿거나 말거나

잡탕은 싫다. 불교를 고민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제사 뒤에 나오는 전이나 생선 조각으로 끓인

걸뱅이탕 같다. 불교는 집을 뛰쳐 나가고, 가정을 뛰쳐나가는 의심과 출가의 종교다. 마누라도 자식도

부모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내게 주어진 그 아무것도 믿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공부다. 삼신 할매와

만신 할베와 온갖 잡신들과 적당히 어울려 인생의 공양을 받는 올림푸스 산의 다신교가 아니다.

부처님이 언제 중국 건너가서 복희씨와 사겼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저승에서 만나면 둘 다 처음

뵙겠습니다. 할 사인데 둘을 맘대로 엮어서 스님이 사주 봐주고 궁합 봐주는 것이다. 난 그런 것들이

진리이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도 없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내가 말띠나 개띠가 아니여서

"우짜것네, 니는 우리집과 맞지 않는 것 같다."하며 해고 통보를 받을까봐 무서워 하고 있다.

내가 출근하는 날 손님이 별로 없다가 내가 출근하지 않고, 개띠인지 말띠인지 하는 대타 언니가

출근 하는 날 손님이 미어터지면, 그것은 내가 원숭이 띠이기 때문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그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명철하고 명석한 사람도 다 한 발은 그런 귀신도

까먹지 않을 씨나락 같은 불합리에 담그고 사는 것이다. 어느날 내가 태어나보니, 나를 원숭이

와 연관을 짓고, 원숭이와 닮은 성향이 많은 사람이라 원천적으로 규정을 짓는 다면 나는

나의 이름이나 부모를 받아들이듯, 나의 운명을 받아 들일 것이다. 어릴 때 부터 무수히

"잔재주가 많고, 잔망스럽고, 의심이 많고다"는 나라는 운명을 세뇌 받을 것이다. 만약 내가

범띠라면, 의지가 확고하고, 범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너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라며 주입 받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원숭이 같아지고, 그는 범 같아 지는 것이다.

용띠와 잔나비띠가 찰떡 궁합이다 하는 말을 처음부터 듣고 시작한다면, 매사에 찰떡처럼

느껴져서 둘 사이가 훨씬 매끄럽게 진행 될 것이다. 그러나 토끼띠와 잔나비띠가 상극이라는

말을 의식하고 어떤 관계를 시작하면 매사에 그래서 그런가, 역시 그런가보다 할 것이다.

이 세상은1살부터 백 서른살까지 다양한 나이가 존재한다. 사람은 상극인 사람도 상생인 사람도 있다.

어떤 나이와 상관 없이 서로 너무 다를 수 있거나 너무 같을 수 있는 것이다.

그기에 무슨 법칙이나 인과율이 존재하나 탐구하는 태도는 좋지만, 몇천년전의 진리가

21세기 나의 해고 이유가 된다면, 나는 너무 무력한 존재다. 다만 원숭이띠라서 잘 다니는

직장에서 잘려야 한다면, 삼천년 이상의 인류 진화사에 나는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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