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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4 05:14
 글쓴이 : 김영채
조회 : 293  

               헌책의 향기 / 김영채 

 

   바람이 부는 때나, 비가 내리는 때, 눈이 올 때, 계절이 바뀌어 갈 때, 이런 때일수록 허전하고 비어 있는 마음을 달래보고 싶은 심정으로 가끔 가보고 싶은 곳이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어느새 목적지를 향하여 움직여 가고 있다. 그곳엔 나를 반기는 수많은 얼굴들이 때 묻은 채 실눈을 부스스 뜨고 미소가 번지는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나도 반가운 눈인사를 하고 서가에 즐비하게 꽂혀있는 헌책들과 마주 보며 침묵 같은 대화를 마음으로 나누다 보면 헌책들과 머무는 곳에 언제 왔을까의문처럼 오고 싶은 곳이다.  

   매달 한 번 정도 습관처럼 헌책방에 들리곤 한다. 산에 가면 낯선 바위, 이름 모를 나무, 키 작은 풀, 지저귀는 새, 숲속을 해쳐가는 바람 소리, 이런 것들이 조금은 낯설지만 가느다란 속삭임처럼 대화를 나누듯이 나는 헌책방에서 책들을 마주할 때마다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쌓이는 낙엽, , 먼지처럼 과거의 때들이 구수하게 풍겨오는 냄새가 향기롭게 배어 온다. 책들의 주름진 모습에는 오랜 삶의 자취, 역사의 이야기, 종교의 말씀, 과학의 탐구, 생명의 경외, 예술의 창작 등 다양한 책들에서 많은 사람이 읽고 간 흔적들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 책들과 많은 시간을 고뇌와 희열, 몰입하며 읽어간 책장마다 독자의 손때 묻은 냄새가 지혜의 향기처럼 느껴진다.  

   가끔 사는 헌책 속에는 잊지 못할 사연들이 담겨있다. 시집을 샀는데 책갈피로 은행잎 두 개가 예쁘게 놓여 있고, 책 표지 안에는 오빠 생일 축하하며…… 선희가쓰여 있는 책을 펼쳐보며 젊은 순수한 애정의 밀어를 훔쳐본 애틋한 기분에 잠겨 본다. 또 수필집 안 표지에 적혀있는 사연은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떠나는 오빠가 마음을 담아, 지연에게아마 미국에 이민 가면서 떠나는 아픔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이 전하는 사연을 엿보며, 그들의 사랑이 잘 결실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레기도 한다. 헌책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 전해주는 자취들이 흔적처럼 남겨있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메시지를 그려보며 그 책의 내용에 더 많은 흥미와 심혈을 기울여 읽게 된다.  

   우리가 흔히 지역이나 대학 도서관을 방문하여 책을 빌리기도 하고, 읽기도 한다. 아마,  책의 보고인 도서관은 독자가 낚시꾼처럼 호숫가에 앉아서 심연 속으로 낚시를 내리고 지혜나 진리, 지식의 보물을 정적만이 흐르는 고요한 물속에서 조심조심 낚아 올리는 곳이라면, 헌책방은 흐르는 강물에 낚시를 던지고 강바람 부는 강줄기를 타고 움직이는 물고기를 지혜의 보물처럼 낚아 올리는 곳이다. 강물이 흘러가듯이 헌책들은 언제 어디로 누구한테 떠나갈지 예측할 수 없다. 유목민들이 계절마다 푸른 초원을 찾아 떠나듯이, 헌책은 자기를 아끼는 애독자를 만나면 헌책방을 떠나야 하는 이방인 같은 처지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책을 찾다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즉시 호주머니 사정에 맞게 가격을 결정하고 나의 서가로 모셔 와야 한다. 그때는 나만이 원하는 것을 가졌다는 행복한 웃음을 머금어 본다. 요즈음 세태는 헌책방도 인터넷 상거래로 이용하고 있으니 쉽고 편리한 점도 있겠으나 헌책과 구매자, 책방주인 간에 서로서로 책에 얽힌 체취가 묻어나고 인간 중심의 대화에서 멀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때 묻은 헌책은 책장마다 과거의 숨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미래의 속삭임도 들려온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나를 되돌아보고 싶어진다. 지난 젊은 시절 유난히 나를 사로잡았던 책을 다시 만나서 그 저자와 무언의 대화도 해보고, 반갑게 나를 반기는 헌책을 찾아 읽게 된다. 또다시 그 책에 몰입하게 되는가 보다. 내 인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더욱 폭넓은 인생관이나 세계관, 종교관을 갖도록 도움을 가져다준 잊을 수 없는 헌책들과 마음속 모퉁이 카페에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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