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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7 09:46
 글쓴이 : 배야
조회 : 574  
 나는 오늘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스스로 그 여인과 나의 관계, 나의 이름, 나의 직업을 알아내리라 다짐했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을 경계로 전혀 다른 세계에 온 듯이 나는 주변의 모든 게 낯설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이 세상에 대해 어떤 여리고 여린 정감 같은 게 남아 있기도 해서 그것이 나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워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가지는 안다. 나는 언젠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것은 내가 사고를 입었다는 것이라는 걸. 내 곁에 있는 여인은 그때부터 줄곧 계속 붙어 있었다. 아마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아마 아내일 것이다. 그런데 난 결혼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다. 모든 과정들은 허공중에 사라졌고 결과만이 남아 나에게 그저 받아들이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내가 결혼을 기억 못하는 것을 안후로 부인이 아니라 마치 여느 자애로우신 어머니처럼 나를 대하고 있다. 내게 밥을 차려주고, 나를 산책시켜 주고. 그러면서도 생활비를 벌어 오는 일들을. 그래서 나도 그 여인을 부인이라 부를 필요가 없이 그냥 저기 여기 하며 부르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여인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물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녀는 그럴 때면 한결같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되풀이했다. 처음에는 별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차츰 난 그녀가 누구이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집에는 서재에 책이 많이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으며 나 또한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의 입에서 구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눈처럼 모든 것을 다시 받아들이는 경험, 나로선 참 의미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서재에서 고른 책이 너무나 재미있게 읽혀 나간다는 점이었다. 몇 달을 그렇게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내가 사고를 입기 전에 그 어떤 지식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찾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어두고, 몇 가지 정보를 보탠 다음 그녀의 블로그를 찾아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인과 나는 부부 사이였음이 확인이 되었다. 그렇다. 그녀의 이름은 이선영이었고, 나는 김동희 우리는 2년 전에 결혼했던 사이였다. 사진 속의 나는 무척 행복해 보여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나는 그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나의 부모 형제, 그녀의 부모 형제는 이따금 만나던 동네 아줌마 아저씨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망각의 장막에 가려 있지만 적어도 그녀가 누구이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는데, 한편 내가 ‘망각’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던 것도 알게 되어 나는 원래 소설가였구나 하는 걸 깨달았던 날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은근히 그녀를 아니 나의 아내 선영이를 관찰하면서 김동희 소설가의 ‘망각’이란 책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약간 놀라며 왜 찾느냐고 하면서 그것은 현재 집에 없다고 했다. 나는 참으로 아쉬운 마음에 그렇구나 하고 말하면서 선영이에게 그 책을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하면서 씩 웃어 보였다. 선영이는 구해 놓겠다며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했다. 나는 소파에 가서 TV를 보면서 선영이를 이따금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내가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글을 써 볼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했고, 나는 나의 선영이에게 나와 다시 결혼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듯 하늘도 붉게 물들었다.
 다음날 새벽, 동네 야산에 올라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아, 너와 같은 삶이 내게도 이루어지는 구나’ 하며 다가올 내 인생을, 내 여행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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