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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7 00:57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292  
채송화2

이용미

창틀 밑에 귀뚜라미 가을이라 소리치건만
작은 마당 블럭사이 채송화는 아직도 한여름이다.
채송화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전설하나
전해들은 게 없다. 원산지도 멀고먼 남미
아르헨티나로 알고 있다.
고작해야 한 뼘 남짓한 키에 손가락 한 마디정도의
여린 꽃잎 한 두 송이가 줄기 끝에서
피어날 뿐이다.
그것도 맑은 날에만 피었다가 점심때가
조금 지나면 시들어 버린다.
큰 관심 밖에 있는 작은 못난이 꽃.
그래도 난 채송화를 좋아한다.
아니 그래서 좋아한다. 나는 채송화다.
“아이고 우리 막둥이 늦게야 생겨나서
종그래기(종지) 같이 간종(요긴)하게도 써먹네.”
칭찬이라고는 인색한 어머니도 이따금은
내게 그런 소리를 했고, 언니들은 더 자주 같은
말을 지금도 쓰고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제 밥그릇 타고난다는
말이 있듯, 그릇의 크기까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커다란 함지박이나 큰 물 항아리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치보시기나 간장,
고추장종지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작은 종지로 태어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작은 일에 연연해하고, 물건을 살 때도
작은 것을 위주로 고르다보니 쓰고 있는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도 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도토리 키 재기하듯 놓여있다.
어디 물건들뿐인가. 보통에도 훨씬 못
미치는 체격, 그 중에서도 유난히 작은 발은
맘에 드는 신발 한 켤레 고르기도 어렵다.
내가 즐기는 것 또한 서랍정리다.
맘이 심란하거나 무력감이 밀릴 때
옷장서랍을 비롯해서 화장대와 찬장서랍 등을
다 빼놓고 차곡차곡 정리하다보면 편안한
마음이 되곤 한다. 그럴 때면 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남자로 태어나 가장이 되어있다면 처자식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벅찼으랴 싶어서
피식 웃어도 본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 됨됨이를
작은 것들에 비유하고 그렇게 인정한다.
그것을 언짢아하지 않는다.
작은 종지가 큰 항아리 쓰임새 못 따라가지만,
밥상에 간장이나 고추장 항아리 통째로
올려놓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런 내게 작은 못난이 채송화는 딱
어울리는 꽃이 아닐 수 없다.
채송화는 여름철 내내 땅바닥을 화려하게
수놓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꽃이다.
그렇다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남의 몸을
칭칭 감고 올라가면서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기다란 줄기 끝에 달랑 한 송이 매달려서
불안하고 가련하게 피지도 않고, 한 줄기에
송이송이 두리 뭉실하게 피지도 않는다.
줄기 끝 적당한 부분에 반듯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이다. 생명력이 강하지만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자라지도 않는다.
반드시 사람들이 관심 갖는 공간에서만 자란다.
지는 모습 또한 때 되면 도르르 말려 없는 듯
스러져 귀엽기까지 하다. 필 때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질 때는 전혀 다른 모양새에
실망하는 꽃과는 다르다.
그 옆자리엔 금방 또 다른 봉우리 맺혀 빈자리
메우며 외롭지 않게 살다가 가는 꽃이다.
채송화는 작아서 환대받지 못하는 꽃이지만
작다고 홀대받지도 않는 꽃이다.
어디서든 분명한 자기자리 지키며 장마나 가뭄,
폭풍에도 끈질기게 버티는 인고의 꽃이다.
좁은 블럭 사이에서도 군말 없이 긴 여름을
보내고, 가는 여름 끝까지 배웅해 주는
의리의 꽃이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아래 빨갛고, 노랗고,
하얀 채송화가 더욱 선명한 색깔로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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