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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04 01:55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76  
막걸리

윤재석

막걸리가 말한다.
“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술이다!”라고. 막걸리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다는 술이라는데,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농촌에서 일하다 해가 중천에 뜨면 땀은 나고 목은 출출하다.
슬그머니 눈이 마을 쪽으로 향한다.
노랑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하얀 수건을 쓴 머리에는 보자기로 덮인
새참이 얹혀있다.
농부의 아내가 막걸리와 김치에 방금 부친 부침개 몇 개를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나온다.
막걸리는 시골이든 도시든 많이 마시는 술, 인심 좋고 정 많은 술이다.

막걸리는 집에서 손수 빚어서 쉽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어머니께서 술을 담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집에 행사가 있으면 술을 담갔다.
쌀을 맑은 물에 씻어서 물에 쌀을 불군 다음 쌀을 시루에 붓고
고두밥(술밥)을 짓는다.
그늘에서 고두밥을 식힌다.
어머니 몰래 술밥을 한 주먹 먹으면 정말로 맛이 있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누룩가루에다 식힌 고두밥을 골고루 섞는다.
적당한 크기의 항아리에 누룩과 섞은 고두밥을 넣은 다음
물을 고두밥 위로 어머니의 손두께보다 약간 올라오도록 붓는다.
따뜻한 아랫목에 항아리를 놓고 이불로 감싸준다.
며칠 지나면 단지에서 술 익는 소리가 난다.
항아리를 감싸주었던 이불을 항아리 주둥이 넓이만큼 열어 놓는다.
술이 되었는가 하여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먹어 보면 혀가 싸하니 독하다.

아버지 생신에 맞추어 술을 거른다.
커다란 옹기그릇을 놓고 그 위에 두 갈래로 된 쳇다리를 걸친 다음
체를 올려놓고 항아리에서 익은 술을 떠내어 두 손으로 꾹꾹
눌러 거르기 시작한다.
술 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다음날 아침은 어른들을 모시는 심부름으로 바쁘다.
동생과 나는 마을을 반으로 나누어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초대한다.
시냇물 건너 도르메(하원산)에 사시는 병암아저씨, 이동아저씨까지
심부름을 한다.
아버지와는 내외종간인 형님과 아우 관계다.
이날 아침은 무척 바쁜 날이다.

60년 전에는 먹을 양식이 부족한 때라 가정에서 술을 담가먹는 것을 단속했다.
면마다 주조장이 있었는데, 주조장에서 술이 조금 잘 안 팔리면
세무서 직원들에게 단속해달라고 요청했다.
들키면 벌금을 내야 했다.
단속에 걸리면 증거물로 술 단지를 주조장에다 보관을 시킨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벌금을 물어야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단속에 걸린 어떤 사람이 술 단지를 짊어지고 가다 시냇가 다리를
건너다 일부러 넘어져 술 단지를 깨뜨리니 냇물이 막걸리를 마셔버렸다.
그렇게 증거를 없애 단속을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집에 손님들이 자주 오신다.
술이 없으면 술 심부름을 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손에 주전자와 술값을 들려주며 식사시간을 맞추어서
술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주조장까지 거리는 20분 정도 걸린다.
부지런히 다녀와야 된다.
때로는 달음질을 쳐야 한다.
주조장에서 주전자에다 술을 가득 채워 주면 잘못하면
주전자 귀로 술이 흘러나온다.
주조장에서 조금 오다가 주전자 귀에 입을 대고 살며시 빨면 막걸리가
입으로 빨려 들어온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술기는 돋아나고 주전자가 조금 가벼워진다.
빨리 뛰어서 집에 오면 주전자를 어머니께서 받아 든다.
가벼워진 주전자를 아실 테지만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정말 모르셨을까.

아내와 집에서 술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남부시장에서 사온 누룩을 찌어서 가루로 만들어 고두밥에 섞어
물과 함께 반죽하여 만들었다.
누룩을 만드는데 물과 밀가루 반죽이 너무 되거나 묽어도 안 된다.
적당히 촉촉한 상태에서 나무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삼베
보자기를 깔고 밀기울 반죽을 넣고 발로 밟아 모형을 만든 다음 꺼내어
그늘에서 말리면서 발효를 시켜야 한다.
고두밥(술밥)을 쪄서 식힌 다음 어머니가 하던 대로 했는데도
술이 잘 안 되었다.
술 만들기에 실패하니, 밀과 쌀만 버리고 말았다.

요즈음엔 술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집이 없는 듯하다.
번거롭기 때문일 것이다.
40년 전에는 큰 술단지를 땅에 묻어 놓고 막걸리를 팔았다.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큰병, 작은 병으로 만들어져 필요한 양만 살 수 있어
매우 편리해졌다.
주조장이 아닌 슈퍼나 작은 가게에서도 살 수 있다.
집에 행사가 있어도 술을 빚을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에서 만든 술이 가끔은 생각난다.

막걸리 안주는 된장에 풋고추, 김치 부침개 등이 좋았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맨 소금 한 번 입에 넣으면 안주가 되기도 했다.
값비싼 안주가 아니어도 되니 막걸리 마시기는 부담이 적다.
만나면 한 잔 하자고 인사를 한다.
만나지 못하면 언제 우리 막걸리 한 잔 하자고 미리 날을
정하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막걸리는 때나 장소가 따로 없다.
일하다 배가 출출하고 목이 컬컬하면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신다.
도시나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을 마치고 나면 뒤풀이로 막걸리 한 잔씩 나누고 헤어진다.
막걸리 한 잔씩 나누며 하루의 일을 정리하고 내일의 계획을 짜는
소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술 마시는 문화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많이 권하는 것이 인사요 정의 표시로 알았다.
요즈음 건강 생각하고 음주 운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절제를 많이 한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해가 된다. 이제는 상대에 대해 배려해 주는
문화가 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막걸리는 우리 고유의 전통술이다.
막걸리가 세계화하여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막걸리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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