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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3 01:01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292  
백수가 된 우체통

신팔복

작은 구멍가게 앞에 멀쩡한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그곳을 지키고 있다.
기쁜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라는 듯 그 우체통에는 제비가 그려져 있다.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는 무척 바쁘게 집으로 드나들었다.
요즘 우체통은 관리하는 집배원들이 다녀갈 뿐,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개점휴업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통신국이 설치된 것은 1895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편업무를 시작해서 경향 각지로 소식을 전한지 120세의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빠르게도 번창했다가 그 효용을 다하고 현대의 통신기술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전화부스와 더불어 매년 조금씩 철거한단다.
진안읍에도 여덟 군데서 발견된다.

전화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교통수단도 없어 이웃이나 타향에 소식을
전하려면 인편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게 옛날이었다.
그 시절, 멀리 시집보낸 딸의 소식을 들으려면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했으니,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애틋했으랴.
내 학창시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급하게 부고를 만들어
몇 사람을 여러 마을로 보내 전달한 적이 있었다.
편지로 띄우면 도착 날이 늦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부고를 띄우는데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했었다.
통신이 발달해서 우리 생활이 무척 편리해진 것을 실감했다.

내가 처음 편지를 쓴 것은 아마 국군장병 위문편지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시절 연말이 다가오면, 고사리 손으로 연필을 꾹꾹 눌러
이름도 모르는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편지를 썼다.
내용은 잊었지만, 나라를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것과 추운 겨울에
몸 건강하시라는 기원이었다.

내가 편지를 처음 읽은 것은 객지 생활을 하는 자식이 집으로 보내 준
편지를 읽어준 것으로 기억된다.
누런 편지봉투도 많았는데 받는 이와 보내는 이의 주소와 이름을 적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으면 편지가 발송되었다.
우편번호는 없었다. 형제자매나 친척간에 안부를 묻는 내용이
일상의 편지였다.
나도 목포에 살던 사촌 형으로부터 편지를 처음 받았었다.
일 년에 몇 통 받는 편지였지만, 편지를 받으면 무척 기뻤다.
집에서 보낸 편지를 군대에서 받을 때는 내용의 희비를 떠나
콧등을 찡하게 울렸다.
객지에서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집안 사정과 농사일정도 알 수
있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래서 두 아들이 번갈아 공군에 입대했을 때도 내가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인생에 젊은 시절이 있듯이 우체통도 화려했던 전성시대가 있었다.
전 국민의 의무교육이 주창되어 국민교육을 시행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교육세대가 우체통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연말연시가 되면 연하장이나 연하 엽서를 보내는 게 유행이었다.
문방구마다 연하장 판매가 성업이었고 우체국도 넘쳐나는 편지로
특별 근무를 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주고받는 편지나 연하장은 큰 기쁨이 되었고
새해의 희망으로 이어졌다.
그때는 우체통의 배가 불렀다. 학창시절과 연애시절에는 보내고 싶은
편지도 많았고, 받고 싶은 편지도 많아 빨간 우체통은 기다림의 상징이었다.

가끔 편지를 받게 되는데 문학 동호회의 알림이나 친구간의 모임,
애경사에 참여한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가 고작이다.
그런데 이 편지들은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수취인만 바꿔서 보내는 것으로 편지 대행업체의
전자우편이라서 우표 없이도 날아든다.
편리하지만 새겨 볼 문장도 없고 정도 깊지 않아
한 번 읽고 버리기 일쑤다.

취미로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도 많았다.
독립기념우표, 대통령의 근영, 무궁화 꽃, 태극기, 한국의 사계절과 철새,
아름다운 동물 등 아주 다양했다.
또한, 매년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발행하는 기념우표가 있어
수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아내가 가져온 우표수집 책 두 권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우표로 병풍을 만들 목표로 수집했다는데 뜻을 이루지 못해
명품을 잃은 것처럼 아쉽기만 하다.

편지글 속에는 가족의 사랑과 애환이 들어있고, 삶의 길과 인생의
역사도 묻어있다.
온갖 비밀을 말없이 간직한 우체통은 오늘도 잠자는 듯이 지난
세월을 보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세월의 무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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