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작성일 : 18-03-21 21:59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119  
못줄 없는 모내기

신팔복

이앙기는 지치지 않는 상머슴이다.
모판을 가득 싣고 우릉 우릉 소리를 내며 무논을 성큼성큼 기어간다.
꽁무니에 달린 기계손이 한꺼번에 여섯 포기씩 척척 모를 심는다.
한 배미 논은 금방 심는다. 논두렁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를 보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 손과 기계 손, 그것은 느림과 빠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다.
엄청난 일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논을 소작할 사람이 없어 겨우내 마음이 짓눌렸다.
처음 짓는 벼농사라서 두려움이 앞섰다.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이른봄부터 밭으로 쓰던 논을 논두렁을 다시 만들고, 물을 채워 수평을 잡았다.
로터리작업을 하던 날, 이웃 논 주인을 만나 부탁한 모를 물었다.
내가 협동조합에 의뢰한 줄 알고 자기 것만 길렀다고 한다.
철석같이 믿었던 일이어서 듣는 순간 당황했다.
내일 모래에 심어야 하고, 한두 판도 아닌데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올해 농사를 짓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고향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구해줘서 모를 사 왔다.
내 일이 아니면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인데 정말 고마웠다.

모내기철은 바쁘기도 하지만 무척 힘이 든다.
같은 시기에 너도나도 벼를 심어야 하므로 일손이 부족하다.
내가 어렸을 때 농촌에선 가족은 물론 어린아이도 거들어야 하는 게
농번기였다.
학교에서도 시기에 맞춰 2, 3일간 농번기방학을 주었고, 행정기관에서도
농촌 일손 돕기로 모내기를 도왔다.

모내기 날이면 새벽부터 논에 나간 아버지는 논을 갈고 써레질을 했고,
할아버지도 논에 나와서 도우셨다.
바지게를 짊어지고 일찍이 논에 모인 일꾼들은 담배쌈지 담배를 꺼내
곰방대에 넣어 피우고서 바지를 걷고 모판으로 들어갔다.
이쪽저쪽에서 한 뼘 이상 자란 모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찌고,
훌렁훌렁 논물에 흔들어 흙을 떨고 모를 모아 한 춤으로 만들어 짚으로 묶었다.
한 바지게 짊어진 모는 논배미 여기저기에 던져 놓고 모를 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못줄을 잡았다.
긴 막대에 감은 못줄에 빨간 리본을 25∼30cm 간격으로 일정하게 달아
눈금을 표시했다.
모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리본 밑에 3, 4개 정도씩 심었다.

앞 둑과 뒤 둑에서 ‘주울!’하고 소리내어 외치면 또 못줄을 뗐다.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며 모를 심었다.
못줄을 힘주어 잡지 않으면 가운데는 논물에 잠기어 흙탕물에
꽃(리본)이 보이지 않아서 야단을 맞기도 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거머리는 물결을 따라와 어느새 종아리에 붙어서
피를 빨아 제 배를 채웠다.
한 곳에 두세 마리가 붙기도 했다.
거머리를 떼면 붉은 피가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당장은 쑥이나 토끼풀로 지혈시켰지만, 상처가 아물고 나면 얼마 동안은
무척 가려웠다.
지금 같으면 파상풍이 염려되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다.

햇빛을 쬐며 논두렁에 걸터앉아 먹는 점심밥은 정말 맛이 있었다.
지금도 먹어보고 싶은 못 밥이다.
간 고등어에 햇감자를 넣어 지져 놓은 반찬은 잊을 수가 없고,
검정 콩장과 머위탕은 점심의 단골 메뉴였다.
시장한 일꾼들은 고봉밥을 감쪽같이 치웠고, 때를 맞춰 아이들이
모여들면 일꾼보다 어린이가 훨씬 더 많았다.
배고픈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종일 못줄을 잡고 나면 밤에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 떨어졌다.

못줄을 대고 심은 모는 반듯하고 간격이 일정하여 논매기도 좋았다.
소주밀식(小株密植) 방법은 수확량을 높였는데, 너른 논에는 장줄과
옆줄을 놓고 눈금에 맞추면 거의 가로세로가 잘 맞았다.
줄을 떼지 못할 정도의 다랑논이나 천수답은 쇠스랑으로 논바닥을 파고
허튼 모를 심었다.
사람마다 눈썰미나 손놀림에 차이가 있어 심고 나면 줄은 비틀 배틀 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내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수업을 몇 시간 끝내고 논에 나가 모를 심었고, 주인으로부터 조금의
수고비를 받으면 필기도구를 사서 나눠주었다.
또 자율학교 기금으로도 냈다. 모내기는 달포가 넘었는데 지금은
이앙기로 모를 내니 열흘 정도면 끝이 날 정도였다.
못줄은 떼지 않아도 간격이 반듯하게 잘 맞는다.
쉽고 편리하게 농사짓는 세상이 됐지만, 농촌은 차츰 어려워지고 있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농촌을 이어갈 젊은 농부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고 소득도 낮고 문화적 혜택까지 적어 농촌을 떠나고 있다.

농업은 인간 삶의 뿌리다.
살기 좋은 농촌이 되도록 서둘러 필요한 정책을 개발해야 할 때려니 싶다.
가을 들녘이 희망의 황금물결로 넘쳐나고, 농민의 얼굴에 생기발랄한
웃음꽃이 활짝 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76 세월호4주기에 영결을고하며 김해인. 04-16 56
975 여수 백야도(白也島)/신팔복 김용호 04-13 53
974 J 표 국수/윤재석 김용호 04-13 45
973 병문안 지명이 04-12 69
972 연어에서는 강물냄새가 난다. - 둘 - 시몬이 04-07 72
971 연어에서 강물 냄새가 난다. - 하나 - 시몬이 04-06 74
970 어느 날 산행 <수필> 김영채 04-04 234
969 전생의 인연은 스님과 비구니/박미향 김용호 04-04 95
968 산사의 연가/박미향 김용호 04-04 84
967 제주 4.3 70주기에 김해인. 04-04 76
966 반려견 이야기 요세미티곰 04-03 89
965 내가 N읍의 산사로 간 까닭은/박미향 김용호 03-31 85
964 귀가/박미향 김용호 03-31 90
963 아버지와 아들 도일운 03-30 119
962 고난주간을 맞아 요세미티곰 03-29 136
961 줄까 말까 아무르박 03-28 148
960 술 이야기 3/신팔복 김용호 03-28 92
959 술 이야기 2/신팔복 김용호 03-28 81
958 지게꾼에서 택배회사로/윤재석 김용호 03-27 99
957 4월이 오면/윤재석 김용호 03-27 154
956 고향친구 혀비 03-26 133
955 삶과 부조리 요세미티곰 03-26 133
954 사립문/윤재석 김용호 03-25 104
953 술 이야기 1/신팔복 김용호 03-25 118
952 감동의 드라마 컬링/임두환 김용호 03-21 129
951 못줄 없는 모내기/신팔복 김용호 03-21 120
950 삶은 기다림인가/윤재석 김용호 03-21 126
949 짝사랑 모래언덕 03-21 140
948 <단편소설> 희귀한 체질 지명이 03-18 172
947 인간 그리고 본능 요세미티곰 03-18 202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