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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8 20:44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223  
술 이야기 2

- 생활과 술 -


신팔복

술은 여럿이 어울려 마셔야 제 맛이 난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혼자서 먹으면 외롭고 둘이 먹으면 단출하다.
적어도 셋이 모여야 자리가 어울린다고 했다.
권하고 받기를 몇 차례 하고 나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취한다.

우리네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양주를 빚어 먹었다.
명절이나 대사가 다가오면 먼저 술을 담았다.
설날 이웃 어른께 세배를 다니며 조청에 떡을 찍어 먹었고,
가양주를 맛보기도 했다.
특히 술이 시지 않고 맛이 좋으면 더 달라고 해서 마셨다.
우리 집에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셔서 설날엔 술을 준비해
세배객을 맞았다.
1960년대쯤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량이 부족했다.
춘궁기 보릿고개에는 먹을 양식도 부족한데 술을 담근다는 게
사치스런 일로 간주되었다.
그때는 식량 절약이 절대적이라서 가정에서는 술을 담그지 못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몰래 밀주를 만들기도 했는데 세무서 단속원에게 발각되면
벌금을 물어야 했다.

내가 중학생 때였다.
완주군 동상면 진외가 할아버지의 환갑잔치에 밀주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접한 아저씨가 술독을 지고 나가 뒷산
대나무 숲에 감추었고 동네 유지들이 단속원에게 시치미를 떼고
설득해 무마시킨 일이 있었다.
손님들은 술이 없으니 밋밋하게 식사만 하고 돌아가 버렸다.
대사는 썰렁한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술이 없는 탓이었다.

대학가나 시장 근처에는 목로주점이나 왕대포집이 많았다.
전북대학교 정문 앞 대로변에 있는 버드나무 집은 안주도 푸짐하고
주인의 인정이 많아 우리 친구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전주 팔달로 큰길가에는 이화집과 매화집이 있었다.
지금의 삼천동 막걸리 거리처럼 전문 술집으로 유명했다.
전남대학에서 학회에 참석차 온 친구들을 이화집으로 안내해서
술을 대접했는데, 광주의 계림동이나 황금동에서 먹는 술자리보다
안주가 풍성하고 술맛이 좋아 그들이 탄복했었다.

술 인심은 담배 인심만큼이나 좋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우연히 주객(酒客)이 들어오면 은근히 한 잔을 권한다.
그래서 인사가 오가고 술친구가 되기도 한다.
진안 시장 초입의 골목집은 술꾼들이 많이 모였다.
아가씨가 술시중을 하면서 농담도 척척 받아넘기고 노래도
잘 불렀기 때문이다.
주안상을 받아 빙 둘러앉아 술을 마시다가 흥이 나면 윗도리
단추 구멍 순으로 돌아가며 유행가를 불렀고,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려 장단을 맞췄다.
네 박자 우리네 뽕짝이었다.
그 시절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예사였다.
흥에 겨워 젓가락으로 주전자를 치기도 했다. 결국 주전자는 쭈그려 뜨려졌다.
술집 주전자는 성한 것이 없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노래 소리가 커졌고 합창으로도 이어졌다.
아가씨는 손님이 오면 이 방 저 방으로 들랑거리며 잔심부름을 했다.
슬며시 팁을 주면 얼른 받아 넣었고 단골손님을 대하듯
안주도 한 접시 챙겨왔다.
마시다 보면 취했고 비척거리며 화장실도 자주 다녔다.
몇 주전자를 마셨는지도 모를 정도가 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아가씨들이 상위에 성냥골을 한 개씩 올려놓아 주전자 수를
계산하기도 했다.
술자리가 끝나면 보통 한 사람이 술값을 냈는데 현금이 없으면
손목시계를 잡히고 외상을 하기도 했다.
외상술은 좋은 게 아니었다.
외상값을 갚으러 가면 다시 술을 서비스로 내놓아 그게 밑술이 되어
취하고 또 외상을 하고 나오는 수가 많았다.
나도 외상을 달았다가 봉급날 갚은 경력이 많다.

술은 퇴근 시간이 되면 꼭 생각났다. 책상을 정리하고 이리저리 훑어보아
술꾼이 있는지 살폈고, 눈짓만 하면 동시에 퇴근해서 또 술자리를
갖는 게 보통이었다.
어제도 먹었으니 오늘도 먹는 것이다. 술은 대개 돌아가면서 사게 된다.
그건 지금도 주객들의 불문율이다.
돈은 떼어먹을 수 있지만, 술은 떼어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술에 대해 공평을 당부한 말이다. 유시(酉時)에 만나 닭이 물을 마시듯
조금씩 마셔야 하는 게 술이라는데 알코올은 마음의 절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게 술의 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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