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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20 03:06
 글쓴이 : ♤ 박광호
조회 : 285  

사람 사는 이야기


           - 世楹 박광호 -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길던 세월을 뒤로, 일손을 놓은 저는 정년퇴임식을 끝으로 인생 전반의 직장생활을 마치고는 서울집을 정리하여 충청도 어느시골 조용한 냇가에 집을 짓고 이사를 했습니다.

딸 하나에 아들 둘, 이렇게 삼남매를 키워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켜 출가를 시킨 후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히 살 량으로...


그곳은 제가 대학 입시준비로 한때 머물렀든 조그만 암자가 있는 산촌마을인데, 당시는 비포장도로로 기차역에서 12킬로미터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지마을이지만, 주변 환경이 수려하여 노후엔 그곳에서 살아야겠다! 라고 고교시절 마음먹었던 곳입니다. 

복잡한 도시환경과 고된 직장생활에서 벗어난 저는 윤선도와 같이 자연을 벗 삼아 전원생활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텃밭에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 등을 심어 야채를 자급하고, 낚시를 하고, 주변 야산을 오르기도 하며,,,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아내는 저와 달랐습니다.

문화생활이라고는 전혀 할 수 없는 시골에서 주변 사람들 거의가 고령의 할머니들인데다 그 수준도 달라 말벗이 없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십육 킬로미터 밖에 있는 읍내를 나가야 하고, 어디 취미를 붙일 데가 없는 곳입니다.

왜 나를 이 산골에 대려다 놓았느냐고 종종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노는 것도 한두 해, 점차 저도 일하던 때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토목기술사인 저는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에 몸을 다시 담고 고문역을 맡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내와 내가 할 일이 다르고, 각자 교통수단도 있어야 하겠기에 승용차도 두 대가 운영 돼야하고, 손님이 올 때나 갈 때도 역이나 터미널까지 나가야 하니까 항시 차 한 대는 집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시골에 산지가 십육 년,

이젠 시골생활이 싫증이 나고 나이도 영감 할멈 소리를 듣게 되는지라 마누라의 잔소리도 부쩍 늘었습니다. 아들딸들이 출가해 나가 살고 두 내외만 살다보니 사는 것도 무료하고 고독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내는 오래 적부터 증권을 해 온지라 그곳에서도 컴퓨터로 일을 보았습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살림을 하면서도 간간 시황을 봐야하니 컴퓨터를 떠날 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렇게나마 시간을 때운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제가 할 일이 더 늘었습니다. 

텃밭도 봐야하고, 정원의 풀도 뽑아야하고, 집안 청소도 도와야하며, 세탁기도 내가 돌리고 빨래도 내가 널고 걷어 들여야 했습니다.

물론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가급적 아내의 잔소리를 덜 듣기 위해서였지요. 가만히 앉아 아내의 밥상 받기가 미안하고, 시골에 대려다 놓은 죄가 있어 눈치도 뵈고,

 그래서 가끔은 내가 설거지를 하기도 했습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시대엔 생각도 못 할 일이지요.

그 만큼 선진화가 되었다 해야 하나요?

젊어선 직장이 우선이고 업무에 파묻혀 가정사는 아내의 일로만 알았고, 월급봉투 갖다 안기면 그것으로 남편의 의무는 다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도, 외식의 기회도, 자녀를 학교에 맡겨두고

선생을 한 번 만나보기를 했나, 가족이 오붓이 나들이 한 적이 있나, 되돌아보면 가장으로서 돈만 벌어준다고 했지, 해 준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길하나, 가정기념일에 선물 하나 해주길 했나,

 아내라고 대리고 나가 옷 한 벌, 목걸이 반지 하나를 사주지 못 했습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아내의 잔소리 깜이었고,

젊어 해주지 못한 죄로 늙어 구박을 받는 것이었지요.


저라고 할 말 없겠습니까? 그때는 그럴 수밖에요... 

젊어 전반 공무원시절엔 국토개발이다, 경제개발이다, 산업화다, 새마을 운동이다, 정신없이 돌아갈 때라,

특히나 저는 건설공무원이다 보니 별보고 출근하고 별보고 퇴근하는, 아니 밤새 콘크리트 타설이 될 때는 날밤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내가 이런 노력이면 어딜 간들 못 살겠나!” 

골치 아픈 공직을 벗어던지고 기업에서 손짓하기에 기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좀 편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습니다.

일은 따라다녔고 낙원은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인이 되고나서는 공무원이 왜 그렇게 무섭던지,,,

기업을 운영하자면 모든 게 법의 제한을 받게 마련이고, 관계청의 관리 간섭을 받다보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고, 공무원이 대감들 같았습니다.

막상 제가 공무원일 때는 그런 것을 못 느꼈는데도 말입니다.

직업이 그러했으니 어찌 아빠의 도리를 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내의 잔소리에 대꾸를 하다보면 다툼이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여운이 며칠씩 가서 서로가 서먹서먹하게 지나게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가도 어떻게 생각하면 아내가 측은하고,

못난 남편 만나 도망가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 귀는 맞통 난 귀, 마누라의 잔소리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요...

그러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옛날에 지은 시 한 수 소개하겠습니다.


궁합


남녀 짝을 짓자니 궁합을 본다는데

사람이 어찌 타고나면서

몸도 마음도

꼭 맞음이 있겠소


허나,

내가 말하는 궁합은 천생 연분이니

천생연분으로 살려거든 내말대로 하시오


사랑하는 이 해라면 해바라기 되시고

달이면 달맞이꽃

아침이면 나팔꽃

저녁이면 분꽃이 되시라


남녀 둘 중 어느 한쪽에 맞추어 살면

그게 곧 찰떡궁합


그렇게 생각하며 아내에게 맞추어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 은지 십이 년 째 되든 2006년 2월28일,

자수성가하여 금의환향 하겠다며 국내 대학 건축과를 나와 서울 유명 건축설계사에 근무하던 큰아들이 느닷없이 독일로 가, 독일 B공대 건축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12년의 세월에 걸쳐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잠시 국내 취업정보도 알아 볼 겸, 안산의 중소기업공단에 볼 일이 있어 귀국했다가 그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사고지점이 저의 집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아랫마을 지방도로 상이었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처리는 죽은 자에게만 모든 혐의를 씌운 결과이어서 그 억울함을 풀고자 우리 내외는 청와대신문고,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지역검찰청, 관할경찰서 등, 모든 관계여로에 탄원, 진정, 재수사요청등으로 3년여 해매고 다녔으나, 초동수사기관으로 매번 민원이 되돌아오는 실정이어서 결국엔 상대 차 보험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일심에서 패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고법에 항소 했다가 소를 취하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시골에 와 살게 된 까닭에 아들을 잃었다.” 는 아내의 무수한 원망을 감수해야 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화병, 우울증 등 병고에 시달리다 지금은 치매가 왔습니다.


병원엘 가보려 해도 아내는 자기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려 한다며 딸아 나서질 않고 자기 고집만을 내 세웁니다.

저도 나중에야 어찌되든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간병하기에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치매라는 게 어제와 오전의 일을 때로는 기억 못하면서 과거에 제가 잘 못했던 일, 시동생 시누이들이 서운케 했던 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달림을 겪었던 일들은 소상이 기억하는 것이 특색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잔소리는 여전한데,  취사하는 걸 식탁에 앉아 지켜 보늬라면 어떤 땐 설탕을 소금으로 알고 넣기도 하고, 찌개를 불에 올려놓고 딴 일을 하며 태우기도 합니다.

 점심을 먹고도 이내 “우리 점심 먹었어?” 하고 묻기도 합니다.

화투놀이가 치매에 좋다기에 화투도 치고, 웃음이 건강에 좋다하여 개그맨이 되어 웃기기도 하고, 가급적 아내의 일을 거의 제가 다 하다시피 합니다.

이런 일이 또 있었습니다.


저의 마당은 대체로 아담한 정원인데 얼마 전 오이를 심어 놓고 긴 막대를 두 개 꽂아 사다리 모양으로 줄을 얽어매고 오이덤불을 올렸습니다.

오이가 몇 개 열려 자라고 있어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며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첫 번째 열려서 제법 컸던 오이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아내를 크게 불렀지요.  “여보! 여보~~!” 아내는 집안에 있다 부르는 소리에 쫓아 나왔습니다.

“여기 달렸던 큰 오이가 없어졌어!  당신이 따 내었나?”

“아~니, 내가 왜 그걸 따! 도둑이 들었었나 봐!”

“이 사람! 도둑이 오이 하나 따 먹겠다고 담을 넘어?”

우린 그렇게 말을 주고받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고 저는 며칠 장마에 웃자란 마당의 잡초를 뽑고 능소화가 피었다가 어지럽게 떨어진 꽃들을 쓸어 모아 버리고는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신발장 위에 오이하나가 얹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오이였습니다.

나도 몰래 한숨이 뿜어져 나오며 순간 설움이 울컥 치밀었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 어쩌지 오이도둑은 당신이었구려!”


이런 일이 최근에는 부쩍 늘었습니다.

 아내가 불쌍하고 가련하여 연민의 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칠십이 넘고 아내가 다섯 살 아래인데,  이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예전 같질 않으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내가 똥오줌을 못 가린다면 이런 아내를 어느 자식이 돌보며 간병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정신병원에 버릴 수도 없는 일...  저라도 건강이 허락되어 아내와 사별하는 날까지는 제가 돌봐야 하는데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간혹 자식에게서 전화가 오면,

“그래!  잘 있다! 네 엄마 걱정일랑 말고 너들이나 잘 지내 거라!”

부모란 그렇게 살다 가는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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