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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1 03:07
 글쓴이 : modory
조회 : 289  

시인이 뭣이 길래

                                      - 어느 잡지사의 신인상 당선작을 보고

                                                                           

신인상 공모에 응모하려고 하니 친구가 그 깐데 왜 응모 하냐? 돈 주고 사면되는데 하고 친구가 빈정거렸다

 

시인이 무엇이길래 영혼과 양심을 팔아 시인이 되려고 할까?

등단이란 꼭대기에 무엇이 있기에 돈으로 책을 사 계단을 쌓아 밟아 오르려고 할까?

시인되기가 부끄럽다.

전문지 또는 전문 계간지들 중 일부가 등단을 빌미로 장사를 하고 있다. 만원이 넘는 잡지 수 십 권을 사야 신인상 준다는 이야기가 문학계의 '등단 장사 낯을 보다란 제목으로 인터넷 파이낸샬 뉴스에 났다.

시를 사랑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그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시인들은 개탄하면서도 근절할 방법이 없으니 그들만의 잔치이니 버려두라고 했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수 십 년 시를 쓴 지식을 문하생을 모아 시를 가르친다.

시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을 일깨워 주고 부적절한 표현을 고쳐 준다.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며 멋지고 아름다운 언어로 영혼을 담은 시를 꾸준하게 쓰게 가르쳐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함께 시를 공부하던 시인 지망생이 올해(2018년) 1월 무렵 문예지에 신인상 받았다고 자랑했다.

모두 축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했다.

3월 책이 나왔을 때 시를 배우던 문우들 몇 몇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럴 수가... 의아해 했다.

신인상을 받은 사람의 이름아래 있는 시들은 신인상 수상자의 냄새도 빛깔도 없는 작품이었다.

시는 사람의 정서나 사상. 자연의 내면이나 아름다움을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에 쓴 사람의 정신이 보여야 한다. 문우들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잘못 되었을 것이라 하였다. 그의 작품을 문우들은 안다. 시를 쓰는 도구가 되는 모국어 구사하는 능력도 안다. 그래서 어떤 영문이냐고 물었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어 다른 시인에게도 6개 월 가량 배우면서 퇴고를 받았다고 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 지나쳐 돈이나 섹스의 검은 커넥션이 있으면 괴물이 된다.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부추겨 잡지를 사는 것을 전제로 당선시키면 그것은 검은 흥정이며 거래이다.

잡지사의 행태가 잇속 챙기는 책장사의 속성이며 상업주의 속성이라 접어두더라도 가르치는 시인과 배우는

문하생은 흥정이나 거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오직 배우고 가르치는 순수만이 있어야 한다.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과 시인을 많이 등단시킨 유명 시인으로 군림하고 싶은 욕망들이 얽혀 고치는 정도를

넘어 대필해주거나 대작을 주는 검은 커넥션은 시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시궁창으로 만든다.

 

詩壇에서 불기 시작한  ‘미투운동이 예술 아니 우리 사회 전반에 폭풍이 되어 불고 있다. 詩壇에는 괴물이 등장하여 철퇴를 맞았다.

성을 전제로 한 것이 미투였다면 代作으로 신인상을 받게 하는 것은 영혼과 양심의 매매일 것이며 또 다른 괴물이 될 것이다.

 

그 괴물이 음습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 언젠가 이 괴물은 아름다운 영혼의 연못을 시궁창으로 만들 것이고 그 물에는 벌레들로 우글거릴 것이다.

시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호수를 떠날 것이다.

그 잡지는 구겨진 휴지보다 뒷간에도 못 갈 더러운 종이 나부랭이가 되어 뭇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힐 것이다

모국어를 아름답게 빚어 꿈을 만들어 주는 시를 병들게 하는 시대, 시를 죽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면 시가 사라지고 독자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활자미디어는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는가?

시는 시인이 읽는 것이 아니고 시를 사랑하는 독자가 읽는 것이다.

 

 

http://v.media.daum.net/v/20180202102140983201822

 


달팽이걸음 18-04-21 23:10
 
시인이 아닌 시인의 하루/ 달팽이걸음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린다. 가장 혼자이기 쉬운 시간은 죽음과 침묵의 시간이다. 바퀴벌레조차 사각거리다 제소리에 제가 놀라 흠칫 멈추는, 고요와 적막의 시간을 골라 오열(五列)처럼 조심스레 난수표와 같은 언어를 해독문자와 대조해본다. 컴퓨터 자판으로 모스 부호로 구난신호를 타전하듯 한 글자 한 글자 조각 그림을 채워 맞추어 나간다. 누가 꿈틀대며 살아 숨 쉬는 언어를 품고 생명 같은 문자의 부유물에 얹혀 시간의 바다에 표류하는 무명의 물체를 발견할 것인가? 누가 아직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가 존재함을 관심 가지고 찾아낼 것인가? 과연 누가 내가 타전한 문자를 수신하고 해독할 것인가?

 바다는 넓고 나는 너무 작다. 파도는 높고 긴 기다림의 고통이 차가운 해류에 휩쓸려 영혼을 마비시킨다. 멀리 해안 여객선이 지나간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기에는 너무 멀다. 글이 너무 쉬우면 심사위원과 평론가는 외면하고 너무 어려우면 독자가 접근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대중적이어도 현학적이어도 안 된다. 구태적이어도 낡아서도 안 되고 너무 앞선 전위나 실험은 위태롭다. 기존의 관념과 틀을 깨트리면서 참신하면서도 전통을 계승할 개성 있는 제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새벽이슬처럼 영롱하고 깊은 산 흐르는 개울물처럼 맑고 때론 천둥처럼 폭포처럼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목소리의 신인이 나타나기를 기성 문단은 기다리고 있다.

 입시 요강 같은 이 주문에 따라 나는 이에 꼭 부합한 출제위원들의 출제 경향에 맞춰 요점 정리하고 오답 정리 하듯 시어를 고른다. 수험생처럼 나의 시가 아니라 출제 경향에 맞는 시라야 한다. 그래야 공인된 시인으로 시인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와 그런 시가 시의 생명을 지닌 시냐? 는 야유와, 그런 시인이 세상의 자격증 가진 직업처럼 꼭 필요한 일이라며 나무라기 시작한다.

 그 자성은 무엇 때문에 시를 쓰고 누구를 위해 시를 쓰느냐는 막다른 곳에 나를 몰아 놓고 청문회를 연다. 결국은 시란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나는 무릎을 꿇는다. 당신은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시를 쓰고 시인이 되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추상같이 파고드는 질문에 나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이 질문은 미술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춤이든 운동이든 우리의 모든 예술의 영역 더 나아가 문화와 인문과 사회와 자연과 과학 모든 삶의 영역에 대입하면 왜 사느냐? 무엇을 하며 사느냐? 삶이란 무엇이냐? 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연결되며, 그 질문에 답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며 우리가 아직 그 누구에게서도 속 시원하게 대답들은 바 없으므로 앞으로 질문자와 제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궁금증이라고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우리 속에 있는 그 무엇이 우리를 그 무엇인가 하게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를 위해서만 쓰는 시라면 누가 뭐라던 내 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충실하면 다른 누구의 시선이나 귀를 의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 혼자의 독백으로 나는 위안 받고 그 자체로 치유의 시간을 가진다. 그것이 자학이나 자해가 될 수도 있고 자기도취에 빠져 터져 나오는 무아지경의 뜻 모를 방언이어도 무방하다. 나 혼자만의 시일 때 나 홀로 시인은 자유롭다. 그러나 독자를 염두에 두는 시라면 경우가 다르다. 읽는 사람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왜 읽어야 하지? 와 잘 읽었다. 라는 독자의 입장과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비유가 하나 있다.

나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 감정이 순화되고 더부룩하고 막혔던 감성이 소화되고 소통되는 시원한 그 무엇이 있다. 노래 부르기를 즐기지만 나는 가수가 아니다.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래 잘하는 가수를 부러워한다. 온 힘을 다해 부른 노래로 단 몇 분 만에 어둠에 갇힌 사람의 마음에 희망을 주기도 하고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위로와 치유의 향기롭고 부드러운 기름을 발라준다.  감추어진 우리의 뜨거운 욕망과 응어리를 흥겹게 때론 격렬하게 춤으로 함성으로 분출시켜 우리 내면의 찌꺼기를 완전 연소 시키는 열정의 가수들을 부러워하고 그런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노래를 듣고 감동 받은 사람들은 더러 있어도 가수가 되라고 권유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수가 되기 위한 경연대회나  동네 노래자랑에도 나가 본 적도 없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야유회나 노래방이나 소규모 모임에서는 빠지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내 노래를 듣고 앙코르를 요청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 노래는 한 상 단발총이다. 육 연발이나 장전했다가도 분위기 봐서 단발로 끝내는 것이 현명하였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그럼에도 내 노래를 듣고 감동 받았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의 감동은 내 노래가 아니라 내 용기와 뻔뻔함에 있었다. 그러고도 노래를 끝까지 부르다니. 정말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간혹 나의 희망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

그러나 가수가 되기에 나의 목소리는 너무 약하다. 박자와 음정도 멜로디도 부를 때마다 제각각이다. 가수가 되기에 너무나 불리한 조건이다. 가수의 길이 내게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맞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 노래를 잘 부르는 것, 노래 잘 부르는 가수를 부러워하는 것, 그리고 가수가 되는 것, 그것의 차이를 아는 것은 나무와 새를 분별할 줄 아는 것만큼 분명하다. 나무는 하늘은 향해 머리를 두지만,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지 않는다. 새는 나뭇가지에 둥지를 두어도 하늘을 난다. 나무는 뿌리가 있고 새는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하다. 시를 좋아하는 것, 시 쓰기를 즐기는 것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쓰는 시인들을 부러워하는 것, 그리고 내가 시인이 되는 것, 가수가 되는 것과 시인이 되는 것, 그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끝까지 내가 우겨 가수의 길을 걸을 경우 나의 욕망은 계속 나로 노래를 부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노래 부를 무대를 열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억지로 어떻게 해서 무대를 열어 노래를 부른다. 나의 무대에는 늘 손님이 적거나 거의 없다. 그래도 내가 꿋꿋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간혹 내 노래가 가창력에는 의문이 남지만 닫혔던 마음을 열고 끌어 울리는 깊은 감정의 소통이 있었다는 알 듯 모를 듯 묘한 격려의 말들 때문에 나는 한 명의 청중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래 부르는 가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상상해 본다. 생계의 문제는 별도이다.

재능의 발견이 단서를 잡는다. 어느 유명한 가수가 어떻게 해서 가수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제가 다섯 살 인가 여섯 살 인가 아무튼 어릴 때였는데 할아버지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흥얼대며 놀고 있었어요. 그 노래를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듣고 “그놈 노래 잘한다. 이다음에 커서 가수 되면 좋겠다.” 하며 칭찬하시고 “이건 상금이다.” 하면서 사탕을 하나 쥐여 주고 가셨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시작했지요. 그 후로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자 때만 되면 너 노래 한번 해봐라 했고 동네잔치, 동네 노래자랑에서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학교에서도 너 희망이 무어냐고 선생님이 물으시면 언제나 가수라고 말했지요. 그러면 선생님은 노래 한 번 불러봐라 하셨어요. 한 번은 어떤 노래를 불렀더니 선생님이 울고 계셨어요. 저는 그때 제가 선생님을 울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 후로는 남을 울리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위의 권유로 군민 노래자랑, 전국 노래자랑 하여튼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인가 제 노래를 듣고 좋아한다는 거 그리고 저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많은 분이 저를 지원해 주신 덕분에 가수로서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라고 하였다. 그가 가수가 된 것은 그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고 그 노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때마다 그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에 걸맞은 칭찬과 포상이 주어졌고 그러면서 그의 창법과 기량이 점점 발전하도록 주변의 환경이 그를 가수의 길로 전념하도록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가 되길 희망했으나 가수가 되지 못했고 가수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수에게는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에 모자라거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문제- 가수의 기본적 재능과 소질은 있지만, 가수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이것이 대회나 콩쿠르 제도를 또는 공개 오디션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골라내기라는 심사제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라는 묘한 뉘앙스가 시인이라는 이름을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것 같다. 시를 쓰는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시인과 시민의 차이는 그 숫자의 희소성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보다 자갈의 쓰임새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은 효용성보다 희소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일까?  만일 다이아몬드가 자갈처럼 많고 자갈이 다이아몬드처럼 흔하지 않다면 그 위치가 역전될 확률이 높다. 결국 다이아몬드냐 자갈이냐는 것의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주관이다. 그 주관적인 것들이 많이 모이면 객관성을 지닌다. 그 주관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글을 보내지 않으면 된다. 그들에게 기득권과 선택권의 권한이 있다는 전제하에 꼬리를 내리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 언더그라운드 가수나 길거리 가수 광장이나 공원의 연주자들이 있다. 시인 중에도 무명시인이 있다. 그들의 예술성에 대하여 논하기는 나로서는 벅차다. 그렇지만 그들의 용기와 열정에 감동한다. 정말로 그들이 예술을 아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도 돈도 인정도 없지만, 그들은 노래하고 시를 읊는다. 그들 모두에게 지나가던 아저씨가 있었는지 그 아저씨가 칭찬하며 사탕을 손에 쥐여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함부로 칭찬 했다간 사람 잡을 수도 있겠다. 그들을 초대하는 손님들이 많아지기를 아니 가던 길 멈춰 그들의 깊은 내면의 울림을 들어보는 넉넉한 영혼들이 많아지기를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윤두서 (尹斗緖)

초등학교 저학년. 때 스스로 시인이라는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좋은 시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시를 암송시키곤 하였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시를 직접 써서 읽게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선생님이 앞에서 자기가 쓴 시를 읽어야 했다. 나는 시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가 시라고 생각되는 글들을 써서 읽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잘 듣고 아이들의 글을 평하기도 하고 때론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전근을 간다는 말이 돌았다. 전근 가기 전 선생님은 자기가 쓴 시라며 시를 한 편 읽어 주고 아이들이 그동안 쓴 글을 전부 돌려주었다. 나에게도 선생님은 그동안 쓴 글을 돌려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 그 글들을 가지고 왔다. 그 종이는 딱지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딱지를 접다가 내가 쓴 글 밑에 밑줄이 몇 줄 그어져 있었고 선생님의 글 몇 마디가 적혀 있었다. -비유가 참 좋다. 사물과 그 뒤를 꿰뚫어 보는 시인의 큰 눈이 있어 보인다. 계속 쓰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겠다. 너는 장차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떠나셨고 우리도 선생님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고 볼 수도 없었다.

그때 선생님이 암송시켰던 시들이 내가 썼던 글들이 어쩌면 그렇게 까마득히 잊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 선생님의 시를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선생님 이름을 문인 명단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선생님은 나 홀로 시인이었나 보다. 그런데 다 잊어버렸는데 선생님의 얼굴도 글도 내가 썼던 글도 시간의 모래 위로 망각의 물결이 덮고 덮어서 아무 일도 없었듯이 물거품만이 모래 위에 과거를 그리고 있을 뿐이었는데 벼락 맞고 기억상실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선생님의 말씀 중 유독 그 말만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그 말이 내 의식 어딘가 깊이 침투되었던 바이러스가 되어 의식과 무의식의 독서와 경험과 사유의 숙주에서 긴 잠복기를 보내다가 뒤늦게 숙성하여 발병한 것이 시가 된 것일까?

가치의 문제- 언어를 난수표와 같은 독서와 경험과 기억의 장터에서 사전과 흥정하고 마네킹에 입힌 옷과 같은 시들을 벗겨 내 몸에 입혀도 보고 구매목록에도 없는 시어를 고르고 막 잡아 올려 퍼덕대는 물고기와 같이 생생한 삶의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새벽 어시장 상인들의 진지한 표정과 외침으로 내 언어의 물고기가 좌판에 올려 진다. 결국 물좋고 싱싱한 물고기를 싸게 팔아야 한다. 거기다 덤으로 친절하고 인간미 넘치는 서비스까지 곁들이지 않으면 단골  손님은 커녕 오던 손님도 발길을 돌리기 쉽상이다. 양질의 상품을 저가에 팔아야 한다. 독자는 왕이다. 독자는 항상 옳다. 어떤 사람들은 상업주의에 찌들은 발상이라고 코웃음 칠찌라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시를 쓴다면 정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밑지며 팔아도 독자들을 감동하게 하지 못하는 개점휴업의 나 혼자 만의 시인이 되지 않으려면 내 목소리에 독자의 귀를 열고 눈을 번쩍 뜨게 하려면 나를 죽이고 나를 살릴 수밖에 없다.

나 살자면서 내가 죽어야 하는 이상한 진실이-나만의 목소리를 지닌 채 진짜로 독자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 이중간첩 같은 어둠의 작업은 어쩔 수 없이 몰래 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처절하게 혼자 해야 한다.

가면서 기다리기- 새벽이 오기까지 감성과 이성과 호소하여 마음에 무엇인가 찡하는 감동을 주고, 삶의 의미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예언자처럼 예언하고, 인류의 물질문명의 폐단과 개인주의에 빠진 에고들에 경종을 울리고, 종말론적 세계관에 빠져 비탄에 젖은 우울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상처받고 아파하는 모든 이에게 치유와 안식과 평화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타전하다 보면 아마추어 시인의 하루는 바쁘게 아침을 맞는다.

현실의 아침- 투잡을 해야 하는 가난한 나 홀로 시인은 애써 타전한 모스 부호가 얼마나 제대로 수신되었는지 문학지 웹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자작시의 성적을 조회 수로 어림하여 환산하면서 전철을 타고 출근하다 졸린 눈을 감을 것이다. 꾸벅꾸벅 졸면서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다.

나 홀로 시인이 되어도 좋고 그저 조악한 모조상품 같은 시를 좌판에 벌려 손님 없이 서성이더라도 단 한 명의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면 날마다 길목을 지키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인 같은 시인이 되어도 좋다. 그러다 어느 날 복권 당첨되듯 대박 날 시 한 편 써서 아무개 시인이 쓴 시라고 지면에 방송에 오르내리는 시 한번 쓰기를 헛된 개꿈처럼 꾸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시적 영감이 있어 산삼 뿌리 발견한 심마니가 실뿌리 하나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산삼을 보듬듯이 떠오르는 시상을 잃지 않으려고 정성스레 메모하며 그 날을 진짜 시인처럼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도 이름도 안 되지만, 시가 좋아서 사람들을 사랑해서 하는 일이니 운명처럼 시를 쓰는 것이다. 바람 부는 날 구름 흐르듯 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왜 시를 쓰냐고

누군가 물으면

어떤 시인의 말처럼*

그냥 웃지요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망향, 문장사, 1939>
金離律 18-04-22 06:20
 
위..김순철 선생님의 말씀이..
시에 대한 자기 고백서..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시에 대한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보이는 것(현상)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경계 너머를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일상이든..철학이든..
모든 의미에 대한 가치는 각자의 몫..
주어진 삶에 대한..
거울의 역할..
그냥 웃는 웃음이..가장..소박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미소라는..^^
새벽에..좋은 글 읽고 갑니다.

본문 올려주신 분도 고맙구요..
여러차례 정독하고..공부하고 갑니다.
modory 18-04-24 03:2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단의 병폐를 보고 흥분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겠습니다.그냥 웃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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