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창작의 향기
  • 시마을동인의 시

(시마을 동인 전용)

 

 ☞ 舊. 시마을동인의 시

 
작성일 : 17-05-08 10:26
 글쓴이 : 오영록
조회 : 85  

푸른 수의(授衣)*


성스런 행위여서 경계로 아지랑이가 울타리를 친다

산천이 푸르기 시작한 것은 수다스러운 제비 입 때문이다

이앙기 지나간 논두렁으로 콩나물 콩 모종이 제 몸보다 큰 음표로 씨줄을 느리고

산비탈 고추밭이며 감자밭이 구불텅구불텅 날줄을 건다

새벽. 밤의 홑청 한 귀를 물고 수탉이 제 엉덩이 탁탁 치다가

목을 길게 빼 비틀면 동녘이 뱀처럼 실눈을 뜬다

소쩍새가 노을을 자분자분 시침하고 나면 또 하늘 홑청이 이슬처럼 내렸다

사이사이 할미꽃, 개나리, 수국, 아카시아 꽃이 수를 놓고

불근불근 주먹 쥐는 감자 때문에 밭이랑엔 울퉁불퉁 힘줄이 서고

매미 소리 시끄럽다고 옥수수도 연신 팔뚝질이다

꺼병이도 제 아비와 갈나무 숲을 노닐며 설익은 울음을 꺼내고

시침할 실이 떨어진 부엉이 바늘귀를 꿰느라 밤을 새울 때

개구리도 새벽녘까지 개골개골 말동무를 했다

아침이면 배추가 푸른 통치마를 두르고 홍당무도 말뚝박기 놀이에 해가 짧다

새소리로 한 코 나비 날갯짓으로 한 코 뜨다 보면

어느새 씨줄은 보이지 않고 한 폭 푸른 옥양목이 된다

풀을 먹이듯 고추잠자리 먹먹히 날면

여치 귀뚜라미 쓰르라미 베짱이 기러기가 협연하듯

푸른 옥양목을 한 귀씩 물고 제집으로 당겨 들면 푸른 홑청은 팽팽하게 풀을 먹는다

새파랗게 풀 먹은 하늘에 조 기장 수수 벼 이삭들이 감사하듯 고개를 숙이면

그때야 상강(霜降)이 안수하듯 푸른 초고에 염료를 붓는다

곱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은은히 채색(彩色)되는 홑청

산천은 자서 같은 여름날 푸른 채록으로 겨울을 날 것이다

수의(授衣)다.


* 수의(授衣) : 겨울옷을 준비함. 또는 겨우살이를 준비함.


鵲巢 17-05-08 19:23
 
자연과 더불어 사시는 선생님
선하게 뵙습니다.
모두 겨울을 준비하는 수의 입니다. 선생님

별고 없어시지예......^^
건강하시고요...
香湖김진수 17-05-08 20:57
 
글 한편으로 일년을 다 살았네
천천히 천천히 사소
그러다 밍대로 못 살드레요
그구 제비는 어디서 봤드래요
제비추리 제비꽃 아니드래요
이종원 17-05-16 07:40
 
도농을 넘나들고 詩와 현실을 투과하는 모습이 흡사 축지법을 쓰는 도인 같아 보입니다
예리한 눈매가 찍어오는 먹잇감은 어느 곳, 어느 대상일지라도 황홀한 잔칫상이 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형님!!!
임기정 17-05-16 23:33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절로 박수가 나옵니다
옥필하시고 또한 건강유념하십시요
허영숙 17-05-22 10:29
 
제비의 수다가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온통 진초록이네요
바쁘신 중에도 시의 집도 단단하게 잘 지으셨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80 팔만대장경을, (4) 강태승 05-19 72
179 장미 (4) 이종원 05-18 75
178 고향 같은 글 썼으면 좋겠다 (4) 香湖김진수 05-15 76
177 우리 엄마 (5) 임기정 05-14 84
176 신전리 이팝나무 (4) 이시향 05-12 80
175 열십자 (4) 鵲巢 05-09 70
174 푸른 수의(授衣)* (5) 오영록 05-08 86
173 아담스애플 (3) 오영록 05-08 70
172 약단밤 (8) 이종원 05-06 88
171 찜 갈비 (4) 鵲巢 05-05 64
170 연주자의 음 (4) 鵲巢 05-04 74
169 (3) 김용두 04-30 101
168 연탄불 (8) 김용두 04-25 155
167 간절곶 (10) 최정신 04-25 228
166 간절곶에는 간절함이 없다 (10) 香湖김진수 04-24 151
165 보문단지에 가면, (6) 강태승 04-23 183
164 오동집 (3) 성영희. 04-19 143
163 우물우물 맛있나요 (3) 성영희. 04-19 135
162 물수건 한 장 뽑는다 (6) 鵲巢 03-31 163
161 봄이 오는 소리 (4) 박광록 03-23 196
160 장엄한 노을 (4) 鵲巢 03-22 152
159 흑태찜 그리고 부질없는 일 (2) 鵲巢 03-22 146
158 이빨을 찢자 鵲巢 03-20 133
157 그게 바로 만남이다 (1) 김용두 03-17 150
156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2) 鵲巢 03-14 148
155 화엄사華嚴寺 흑매화… (4) 강태승 03-14 169
154 여우 선생님 (3) 이시향 03-09 179
153 봄 들판에 서서 (4) 한인애 03-07 245
152 껍질 깨기 (4) 이종원 02-23 253
151 구두를 닦다 (7) 강태승 02-22 271
150 겨울 숲 (5) 김용두 01-28 357
149 클립 (6) 성영희. 01-12 401
148 (6) 오영록 01-09 359
147 축!! 2017 신춘문예 강태승, 성영희 시인 당선 (9) 조경희 01-02 499
146 종이학 (4) 오영록 12-20 348
145 0으로 반성, (5) 강태승 12-14 392
144 역사는 진실만을 말한다 (2) 박광록 12-01 347
143 저물녘 또는 저물驛 (4) 강태승 11-23 479
142 오히려 객지 (12) 허영숙 11-15 629
141 숲 섶 (14) 최정신 11-04 699
140 당신은 언제나 꽃잎 (8) 박광록 11-03 464
139 메타세콰이아 나무 (10) 김용두 10-26 397
138 붉은 가을 (14) 이종원 10-25 525
137 가을이라 불렀더니 詩라고 답했다 (15) 허영숙 10-25 604
136 춘천1 (16) 香湖 10-24 433
135 일박이일 (7) 박커스 10-23 343
134 가장들 (7) 성영희. 10-17 534
133 휴전하는 방법 (12) 이종원 10-09 425
132 입김 (8) 김용두 10-06 425
131 축~!!! 허영숙 시인 시집 『뭉클한 구름』 발간 (8) 시마을동인 09-29 524
 1  2  3  4  

 

(커뮤니티)

(합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