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창작의 향기
  • 시마을동인의 시

    (시마을 동인 전용)

  ☞ 舊. 시마을동인의 시

 
작성일 : 17-05-08 10:26
 글쓴이 : 오영록
조회 : 572  

푸른 수의(授衣)*


성스런 행위여서 경계로 아지랑이가 울타리를 친다

산천이 푸르기 시작한 것은 수다스러운 제비 입 때문이다

이앙기 지나간 논두렁으로 콩나물 콩 모종이 제 몸보다 큰 음표로 씨줄을 느리고

산비탈 고추밭이며 감자밭이 구불텅구불텅 날줄을 건다

새벽. 밤의 홑청 한 귀를 물고 수탉이 제 엉덩이 탁탁 치다가

목을 길게 빼 비틀면 동녘이 뱀처럼 실눈을 뜬다

소쩍새가 노을을 자분자분 시침하고 나면 또 하늘 홑청이 이슬처럼 내렸다

사이사이 할미꽃, 개나리, 수국, 아카시아 꽃이 수를 놓고

불근불근 주먹 쥐는 감자 때문에 밭이랑엔 울퉁불퉁 힘줄이 서고

매미 소리 시끄럽다고 옥수수도 연신 팔뚝질이다

꺼병이도 제 아비와 갈나무 숲을 노닐며 설익은 울음을 꺼내고

시침할 실이 떨어진 부엉이 바늘귀를 꿰느라 밤을 새울 때

개구리도 새벽녘까지 개골개골 말동무를 했다

아침이면 배추가 푸른 통치마를 두르고 홍당무도 말뚝박기 놀이에 해가 짧다

새소리로 한 코 나비 날갯짓으로 한 코 뜨다 보면

어느새 씨줄은 보이지 않고 한 폭 푸른 옥양목이 된다

풀을 먹이듯 고추잠자리 먹먹히 날면

여치 귀뚜라미 쓰르라미 베짱이 기러기가 협연하듯

푸른 옥양목을 한 귀씩 물고 제집으로 당겨 들면 푸른 홑청은 팽팽하게 풀을 먹는다

새파랗게 풀 먹은 하늘에 조 기장 수수 벼 이삭들이 감사하듯 고개를 숙이면

그때야 상강(霜降)이 안수하듯 푸른 초고에 염료를 붓는다

곱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은은히 채색(彩色)되는 홑청

산천은 자서 같은 여름날 푸른 채록으로 겨울을 날 것이다

수의(授衣)다.


* 수의(授衣) : 겨울옷을 준비함. 또는 겨우살이를 준비함.


鵲巢 17-05-08 19:23
 
자연과 더불어 사시는 선생님
선하게 뵙습니다.
모두 겨울을 준비하는 수의 입니다. 선생님

별고 없어시지예......^^
건강하시고요...
香湖김진수 17-05-08 20:57
 
글 한편으로 일년을 다 살았네
천천히 천천히 사소
그러다 밍대로 못 살드레요
그구 제비는 어디서 봤드래요
제비추리 제비꽃 아니드래요
이종원 17-05-16 07:40
 
도농을 넘나들고 詩와 현실을 투과하는 모습이 흡사 축지법을 쓰는 도인 같아 보입니다
예리한 눈매가 찍어오는 먹잇감은 어느 곳, 어느 대상일지라도 황홀한 잔칫상이 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형님!!!
임기정 17-05-16 23:33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절로 박수가 나옵니다
옥필하시고 또한 건강유념하십시요
허영숙 17-05-22 10:29
 
제비의 수다가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온통 진초록이네요
바쁘신 중에도 시의 집도 단단하게 잘 지으셨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62 아직도 애 임기정 05-27 8
361 왼발주의자 활연 05-27 13
360 봉초 활연 05-27 17
359 선수 (4) 활연 05-26 59
358 좀 낡은 연애 (2) 활연 05-26 50
357 먼 생 (2) 활연 05-25 64
356 축!! 장승규 동인 시집 <민들레 유산> 출간(시집 증정) (11) 허영숙 05-25 62
355 운동화 세탁소 (4) 활연 05-25 61
354 공손한 손 (8) 임기정 05-24 61
353 섬진강 (7) 최정신 05-23 148
352 알지 못하는 앎 (4) 활연 05-22 128
351 운주사 깊은 잠 (8) 서피랑 05-22 108
350 절편의 발생 (6) 활연 05-21 179
349 농사작법農事作法 (6) 강태승 05-18 130
348 발가벗은 사미인곡 (4) 香湖김진수 05-12 160
347 봄, 본제입납 (7) 허영숙 05-09 252
346 두꺼비 (5) 활연 05-04 266
345 감기 (12) 서피랑 04-30 270
344 푸른 눈썹의 서(書) (8) 조경희 04-25 267
343 함박눈 필법 (7) 오영록 04-24 200
342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녀 (8) 香湖김진수 04-23 212
341 빗물 (8) 강태승 04-22 232
340 구들장 (5) 성영희 04-22 221
339 이시향 동인 동시집 『아삭아삭 책 읽기&… (9) 허영숙 04-18 179
338 컬링 (2) 香湖김진수 04-16 164
337 사월, 아주 길고 긴 노래 (3) 서피랑 04-15 250
336 노을 부동산 (4) 문정완 04-13 241
335 등꽃 (3) 장남제 04-11 196
334 우리 집에 찾아온 봄 (5) 이시향 04-05 255
333 쉘부르의 우산 (7) 조경희 04-05 288
332 고드름 (8) 서피랑 04-03 271
331 마르코 修士 (10) 강태승 04-03 258
330 낙화 (6) 장남제 04-03 220
329 노을 (3) 김용두 03-30 238
328 신춘문예용新春文藝用? (5) 강태승 03-19 409
327 고레섬 (4) 장남제 03-19 229
326 꽃방귀 (4) 이시향 03-19 266
325 나는 내게 반성하기로 했다 (8) 강태승 03-15 371
324 생각해야지 (7) 서피랑 03-14 322
323 폐가 (5) 김용두 03-08 290
322 거꾸로 보는 풍경 (7) 조경희 03-08 382
321 마리아 칼라스- (6) 장남제 03-06 237
320 빨래하다가 (6) 오영록 03-05 309
319 어쩌면 좋을까 (7) 성영희 03-04 410
318 베트남쌀국수 (8) 서피랑 03-02 313
317 나미브 사막에서- (6) 장남제 03-02 249
316 아이티로 간 내 운동화 (5) 이시향 03-01 234
315 자연自然도 시를 쓴다 (7) 강태승 02-28 341
314 엇노리 (9) 최정신 02-27 387
313 엄니의 흔적- (6) 장남제 02-26 282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