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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을 동인 전용)

  ☞ 舊. 시마을동인의 시

 
작성일 : 18-03-05 11:40
 글쓴이 : 오영록
조회 : 241  

빨래하다가 / 오영록

 

 

옷장 차곡차곡 개켜진 속옷이 두툼한 일기장 같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아직 입어보지 않는 날

무엇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한강을 걸었던 날도 있고

정장을 입고 친구를 조문한 날도 있다

 

놀이터에서 돌아와 지그재그로 벗어던진 아이들 일기

늦은 회식 자리에서 장미꽃을 피워왔다고 찢어버렸던 일기장도 있다

 

오늘은 고단했는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꺾인 팔에서 ㄱ이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구멍 난 무릎에서 ㅇ이 보이고

라운드 작업복에서 ㅎ이 보인다

 

저 얼룩들, 아물아물한 기억 속에 사는

잘 해독되지 않는 유년의 언어들이

밑그림으로 깔려있기도 하다

 

정리되지 않은 자음과 모음

다시 비비고 문질러 지운다

웃음만은 구겨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삭삭 문질러

다림질하듯 펴서 갠다

 

어젯밤 아무렇게 써 놓은

분홍일기장이

늦은 오후인데도 아직 발치에 둘둘 말려 있다


빈터동인지 발표( 2018 봄)


강태승 18-03-05 19:32
 
놀랍게 보이는 착상- ㅎ

오늘도 쌍동이 착상?하셨습니다 ㅎ
장남제 18-03-06 14:15
 
오시인님 빨래는 빨래가 아니라
시네요.ㅎ
속옷만 일기장이 아니라
빨래가 온통 일기장이 되는
하루일을 기록하는

원피스 나오니
모르는 분들은 여자인 줄 아실라.
덤비실라.ㅎ
서피랑 18-03-07 14:53
 
일상생활 속, 감성이 잘 드러나는 시,
조곤조곤한 서술들이 정겹습니다..^^
조경희 18-03-08 14:01
 
재미있네요
나쁜 기억은 깨끗이 지우고
좋은 기억만 반듯하게 다림질하듯
차곡차곡 잘 개켜진 빨래
잘 감상했습니당
임기정 18-03-11 19:18
 
저는 생활속에 묻어나는 시가 좋아요
무진장 좋아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허영숙 18-03-19 11:55
 
오시인님의 시선에 닿으면 다 시가 되는군요
제 기억의 옷장에는
어떤 추억들이 쌓여 있는데 열어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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