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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12 08:42
 글쓴이 : 안희선
조회 : 108  

법전스님의 스토리를 대하니, 숙연해진다

 

사람이 그 무엇을 하던,

한 목숨 걸고 정진한다는 일

 

그 얼마나 가치있고

영혼의 상승을 기하는 인생이던가

 

그렇게 보면,

시를 절대시 하고, 시 이상의 소중한 결과가 없다고 보는

시인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늘의 시인들이 시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 주는 그 무엇이 과연 있던가

 

영혼은 따로 놀고 그저, 허명 虛名을 위한 글짓기만

부지런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KVOk&articleno=4439350

 

 

 

 ‘절구통 수좌’가 남긴 사자후, 시대를 이끌 사람 ‘누구 없는가’


절구통.jpg

 

 

‘이 시대 마지막 도인’이라는 법전 스님 다비식에 다녀왔다. 

가야산 해인사 연화대를 곱게 장식한 연꽂봉우리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다비장 장작불은 스님의 육신을 남김없이 활활 태웠다.

인생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났다 흩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열 네살에 출가해 80년 가까운 세월을 오로지 수행으로 일관한

법전 스님도 한 조각 구름처럼 적멸(寂滅)로 돌아갔다.

 

이로써 한국불교의 한 세대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스님은 1947년 ‘한국불교 르네상스’이자 참선수행의 진풍경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봉암사 3년 결사’의 마지막 생존자.


당시 성철·청담·향곡·자운·혜암 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과 함께

‘부처님 법대로’를 외치며 일제에 훼손된 한국불교 선풍을 복원한

주역 중 한명이었다. 당시 성철은 “밥값 내놓아라”고 소리치며

스님들의 멱살을 잡아끌고 계곡물에 집어쳐넣으며

수행을 독려했다고 한다.


이런 치열하고 서슬 퍼랬던 결사로 피폐한 한국불교를 개혁해

오늘의 조계종단을 세웠다. 

법전은 이들 가운데 청담, 성철, 혜암에 이어 네번째로 조계종 종정이 됐다.

 

 

법전은 지난 반세기 한국 선불교의 종갓집 역할을 한 해인사의

‘고승 열전’에서도 마지막 큰 별이었다.

누더기 한 벌로 한국 불교사에 일대 충격을 던진 ‘가야산 호랑이’ 성철,

한국불교의 계율을 곧추세운 ‘무애도인’ 자운,

손가락을 몽땅 소지공양한 ‘자비보살’ 일타,

“공부하다 죽어라”고 벼락치던 ‘해인사 대쪽’ 혜암….


이번에는 이들을 뒤이어 참선의 진수를 온몸으로 보여주던

‘가야산 선인’ 법전 스님까지 열반의 길을 따라간 것이다.

이제 누가 있어 이 어른들의 불같았던 선풍과 기상을 되살리고

지리멸렬한 이 세상을 흔들어 깨울 것인가.

 

법전 스님은 늘 과묵하고 고요했다.

아무리 좋아도 작은 눈을 더 작게 뜨고 희미하게 웃음 한 번 지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한 번 참선을 시작하면 절구통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로도 불렸다.


유난히 키가 작은 스님이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모습은

태산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방석에 꼼짝않고 앉아 있다가

엉덩이가 짓무른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언제가는 참선을 마치고 보니 먹다 남은 순두부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피었더란다.

정도면 인간 본능인 잠까지 물리친 초극의 경지다.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는 암자의 문을 걸어 잠그고 한겨울을 났다.

암자의 쌀을 탈탈 털어 한꺼번에 밥을 해 바구니에 담은 뒤

찬밥 한덩이에 김치 한 조각 물 한 모금으로 버티며 화두 하나에 몰입했다.

굶어죽을 각오로 홀로 태백산에 들어가 10년 두문불출한 일화도 유명하다.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얼 굴 한 번 보고싶다고 사람을 보냈는데도

매몰차게 외면할 정도였다.

 

성철 스님과는 마음 속까지 훤히 통해서 말이 필요 없는

지음(知音)의 형제간이자 사제간이었다.

성철 스님이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 동구불출을 시작할 때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친 이가 바로 법전 스님이었다.

그는 스승을 그야말로 ‘부처님처럼’ 모셨다.

성철도 노상 “법전 발 뒤꿈치만큼이라도 따라가라”며 애정과 믿음을 보였다.

평생 성철 스님이 앞장서고 법전 스님이 뒤를 바쳤다.

성철과 법전의 제자들은 원택(성철)·원철(법전)의 경우처럼

똑같이 법명에 ‘원’자를 돌림자로 쓴다.

성철 스님이 “내 제자가 곧 법전의 제자”라면서 그렇게 법명을 지어줬다.

40년간 성철을 모셨던 법전 스님은 성철 법맥(法脈)을 이은

공식적인 법제자였다.

 

이번에 다비식을 앞두고 법전 스님을 회고하는 자리에도

두 스님의 제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성철 스님의 영원한 효상좌'인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이

늘 ‘좌복 위에 법전 만한 인물이 없다’고 칭찬했다.

참선할 때는 벽에 박힌 대못이었다.

정말 절구통처럼 미동도 없었다”고 칭송했다.

“간결하고 올곧고 욕심 없고 소박했던 분이었다.

나무도 아프다고 생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고

목욕물도 뜨겁게 데우지 못하게 했다”(수도암 선원장 원인 스님)는

말도 나왔다.

 

 

“그 흔한 다구상 하나 없이 살았다.

방은 청소가 필요 없을 만큼 티끌 하나 없이 정갈했다.

스님 입적 후 방을 정리했는데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해인사 승가대학장 원철 스님)는 이야기나

“속옷과 양말을 손수 빨았고 절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평생 외식 한 번 하지 않았을 것”(원상 스님)이라는 증언은

법전 스님의 평소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인사 구광루에 ‘즉사즉리 청백가풍(卽事卽理 淸白家風)’이라는

글이 붙어있는데 이판(수행)과 사판(행정)에 원만하고 근검절약한

스님의 삶과 수행이 그러했다”(해인총림 율원장 서봉 스님)는

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해인사 다비식을 본 게 성철·혜암·지관 스님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

역시 대찰답게 법전 스님의 장례도 장엄했다.

수많은 인파가 가야산에 몰려들었다.

깊은 산중에서 고고하게 살다간 스님 다비식에 이처럼 인파가 몰리는 것은

수도승의 고결한 삶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봉암사 개혁' 세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법전 스님이 이 시대 불교와 사회에 남긴 숙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지금이 바로 한국불교에서 ‘봉암사 결사’와 같은 개혁운동이

필요할 때라는 일깨움이라고 본다. 산중의 승(僧)이 속(俗)의 염량세태와

종단정치에 깊이 물들어 손가락질 받는 일이 예사로 일어나는 요즘이다.


도(道)보다 돈이 앞선다는 비판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따라서 그 개혁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고결한

수행자의 삶을 되찾는 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건만,

사람들은 죽도록 그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스님이 임종을 앞두고 남긴 선시는 세속의 탐욕과 명리에 취해

내면(마음)을 돌보지 않는 후학들을 향한 따끔한 죽비소리다.

따지고 보면 임종게 또한 같은 내용이다.


“산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깨달음)를 구하는구나.”


 

이제 법전 스님을 태운 연기는 가야산 너머로 사라졌다.

다비장의 재도 싸늘하게 식었다.


스님은 생전에 법어집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와

제자들의 간청에 못이겨 자서전 <누구 없는가>를 펴냈다.


책에서 스님은 “바보처럼 꾸준히 가라.

래야 자신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 스님 평생을 요약한 화두가 사자후처럼 다시 가슴을 친다.

비뚤어진 시대와 불교를 바르게 이끌 사람,


“그 누구 없는가”.


                                               - 김석종 논설위원  2014.12.28

 


절구통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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