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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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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지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01회 작성일 23-11-02 08:12

본문

[11월이다]
박의용

언 땅 녹여 씨 뿌리고 모종하고
그 새싹 보며 희망을 노래하던 봄도
무더위와 장맛비도 아랑곳 없이
녹음 짙도록 무성하게 잘 자라
희망이 실현되어 가던 여름도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린 풋고추가
맑은 하늘 햇볕에 새빨갛게 익어가던
홍고추를 보며 희망이 열매를 맺던 가을도
이젠 지나고
11월이 되니
앙상한 고춧대만 희나리 고추 몇 개 달고 남아
회상에 젖는다

잘 살았다
고맙다 세월아
이젠
지난 시간을 되새김하며
추억 속의 소나타를 들을 것이다
잔 속의 짙은 커피 향이
아련한 지난 향수를 코끝에 불러온다

앞을 보며 달리다 보니
어언 열 달이 지났네
생각 없이 살아온 것도 아닌데
희망했던 바를 영 못 이룬 것도 아닌데
지나고 보니 남는 게 없네
이젠 희망이란 말을 잊고 살아야 하나
다시 돌아가 희망을 노래하며 씨 뿌리기엔
너무도 많이 왔구나
팔에 힘도 부치고 그렇구나

이제 남은 두 달
겨울에 넉넉하게 먹을 김장이나 담가야겠다
꽁꽁 언 땅에 김장독 묻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나의 아들 딸이
넉넉히 먹을 김장을 생각하며
그들이 다시 이어서
언 땅 녹여 씨 뿌리고 모종하고
그러하기를 희망하며
작은 보람을 준비하는
그런
11월이다

새로이 다짐하는 것은 어려워도
남은 시간은 지난 회상을 되새기며
고운 것들만 골라서
고이고이 포장 해야겠구나
내 인생의 11월은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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