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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혼미할 때가 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성백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448회 작성일 21-07-09 18:30

본문

사는 게 혼미할 때가 있다 / 성백군

 

 

마키키 등산로 입구에

흩어져 모여 앉은 작은 새들이

풀숲에다 대고 연신 굽신거린다

풀잎에 가려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지난밤 비바람에 떨어진 풋 망고들을 콕콕 쫀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하며 예의를 갖춘다고 절을 한다.

 

망고로 피클 담그면 맛있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

주위를 돌아보며 주우려 살피는데

일순 조용해지는 숲 속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한마디씩 말을 하는 것 같다.

돈 주고 사 먹지

왜 여기 와서 우리 밥그릇에 손을 대느냐고

돈이면 다 된다고 하는 사람들,

나뭇가지에 앉아 무슨 비아냥이라도 하는 듯

저마다 쫑알거린다.

 

먹을 것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아

몇 알 주우려 했다가 도둑이 되고, 가난뱅이 취급을 당하고,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돈 벌기가 쉽지 않고,

쌓아두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마음을

하늘 밑이 다 제집이고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살아가는 새들은 알까?

 

잠깐 새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낙과 몇 주워 보는데 다 금이 가고 깨어지고 틈 사이로

작은 벌레들이 먼저 들어와 꼼지락거린다

그러고 보니 새들은 도둑보다 더한 강도 아닌가

새들은 지네들이 강도인 줄 알았을까? 몰랐을까?

새들이 앉았던 자리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고

빈 나뭇가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바람맞아 졸고

화살 땡볕은 신록을 뒤짚으며

오늘의 사건을 하늘 끝까지 전송한다마는, 아마

내일도 낙과는 떨어질 것이고,

벌레들은 끼어들고, 새들은 날아들고,

나 같은 어리벙벙한 사람 몇, 낙과를 줍느라 혼미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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