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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론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초운김주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85회 작성일 20-12-26 00:38

본문

그릇론

 

설거지를 하거나 쓰레기통을 비워보라

비움을 멈출 때 그릇은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다

끊임없이 채우고 다시 비울 때

그리하여 처음처럼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때

그릇은 비로소 그릇이 된다

숨을 뱉지 않고는 새로운 숨이 들어올 수 없고

소리가 나가서 속을 비우지 않고는 피리를 불 수 없듯

어떤 숲도 자기 속을 덜어내지 않고는 제 안에 길을 낼 수 없다

세상은 온통 그릇으로 가득하니

하루도 24시간을 담는 시간의 그릇이 아니던가

지구도 바다를 담고 있는 물그릇이 아니던가

밤하늘도 별들을 담고 있는 빛그릇이 아니던가

내가 누워 자는 방도 집도 나를 품은 그릇이니

제 속을 비우지 못한 사람은 여유도 여백도 없을뿐더러

그 무엇으로도 큰 그릇이 못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청과 겸허함으로 더 커지는 말그릇처럼

모든 시공을 경계 없이 다 품고 있는 하늘처럼

그 무엇이든 비우면 비울수록 더 큰 그릇이 된다

모든 그릇은 오직 비움의 자세로 제 일생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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