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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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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박상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2회 작성일 26-05-13 14:01

본문

빈 마당 

        박 상 영


처마 끝에 매달린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못하고

저녁을 붙들고 있다


산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말없이 옷빛을 갈아입고


강물은

낮은 곳으로 몸을 옮긴다


세월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의 안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빛이라는 걸


빈 마당을 쓸다가 알게 되었다


젊은 날은

강물의 윤슬처럼 번뜩였으나


지금은 무뎌진 자리마다

둥근 숨결이 남아 있다


개울은 돌을 밀어내지 않고

휘어가며 길을 만들고


매화는 철이 되면 피고

눈은 때가 되면 녹아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탁한 물도 오래 고이면

스스로 맑아지듯


사람의 마음에도

오래 가라앉은 물빛이 남는다


밤이 깊어

창호지에 달빛 한 장 스치면


나는 비로소

흐르는 세월 붙잡지 않고


떠남도

제 자리에서 한 생을 다함을 안다


바람은 문틈으로 다녀가고

등잔불은 흔들림 속에 고요하다


세월이란

어쩌면 그렇게


흔들림 끝에

맑아지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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