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의 혼잣말/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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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60223)
봄비의 혼잣말/서하
주절주절 혼잣말하는 봄비
챙챙 감아둔 태엽이 슬슬 풀리는 것 같고, 덜 마른 속옷 입은 것 같고, 참았던 오줌 누고 부르르 떨 듯, 제로 점 놓친 저울 같고, 털갈이하는 고양이 비릿한 수염 같고, 똥 마려운 개 뒷걸음질 같고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 같고, 말수 적은 시아버지 물티슈로 탁자 닦는 것 같고, 구순 넘은 시어머니와 서른 넘은 상전 며느리 같고, 군살 출렁이는 슈퍼 아줌마 같고, 아무도 듣지 않는 무명 가수의 노래 같고, 돈 없어 수학여행 못 간 아이 잠꼬대 같고, 강물이 소리도 없이 외치는 것 같은
혼잣말에는 혼이 없고 봄비에는 봄이 없고, 불길한 희소식 같은, 숙변 밀어낸 듯한, 저 봄비
(시감상)
겨울이 물러나기 시작한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아직은 몇 주 더 남았지만, 저 앞에 봄이 보인다. 섭리처럼 봄은 비를 내릴 것이고 비는 생명을 재창조하는 물길이 될 것이다. 봄비에 대한 시인의 비유들이 신선한 횟감처럼 쫀득하다. 봄이 여름을 불어오듯,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자라고 있는 시간을 불러온다. 시인의 혼잣말이 귀에 아련하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봄비의 풍광에 잠시 귀 기울이면 마음이 초록이 될 것 같다. 목련이 필 때쯤 소리도 없이 외치는 강가에 나가보고 싶다. 봄이다. (김부회 시인, 평론가)
2026 시집 (우리 슬픔은 기쁨의 그림자래) 61쪽
(서하프로필)
경북 영천, 시안 등단, 대구 문학상, 이윤수 문학상, 시집(아주 작은 아침)(우리 슬픔은 기쁨의 그림자래) 외 다수

서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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