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 =한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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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
=한가운
12월 34일 하루만 빨간 스웨터를 뜨자
세상이 잠시 멈춘 그 하루만 잊고 지낸 체온을
대바늘을 놀리면 꼬불한 골목길이 생기고 아이처럼 코가 풀리고 한 코가 빠져서 웅덩이가 생기지 웅덩이에 빠진 개구리 한 마리가 들락날락 스웨터에서 헤엄치지 개구리를 건지려고 대바늘 대신 손가락을 집어넣어 개구리를 찾느라 웅덩이가 커진
빨간 스웨터에서 초여름 내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웅덩이에 나무를 심으면 스웨터에는 숲이 생길까? 웅덩이가 얼면 스웨터에서는 썰매 타는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이 스웨터 속으로 사라지는 12월 34일 하루만 스웨터를 뜨자
스웨터 뜨다 코가 풀리면 엄마는 스웨터를 풀었지 스웨터는 사라지고 빨간 털실 뭉치가 생겼지 도로 감은 털실 뭉치는 처음보다 더 커지는데 엄마는 왜 나를 감으며 작아졌을까? 길게 풀려나가는 빨간 털실을 따라 엄마가 사라지는
12월 34일 하루만 스웨터를
따뜻한 잔디밭에 앉아 빨간 스웨터를 뜨자
스웨터에서 웅덩이를 꺼내 잔디밭에 던지면 웅덩이에서 개구리가 나오고 웅덩이에서 엄마가 나온다 엄마는 다시 스웨터를 풀어 알록달록한 골목길을 만든다
얼띤 드립 한 잔
--우선. 12월 34일은 한 해 지나, 삼 일째 되는 날이다. 물론 34일은 올 수 없는 불가능한 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해 하나 또 올 수도 있는 그런 날 어쩌면 시인은 그런 날을 고대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삼 일째라고 가정했을 땐 作心三日이란 말도 언뜻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무엇을 계획하고도 잘 이룰 수 없는 시인의 마음을 숨긴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빨간 스웨터, 털실로 두툼하게 짠 상의다. 옷이다. 옷은 씨실과 날실로 엮어 만든다. 한자로 표기하면 경위經緯라고도 하고 일의 진행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는 빨간 스웨터다. 초록도 아니고 분홍도 아닌 오직 빨간, 언뜻 열정적인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위한 옷 나를 덮을 수 있는 옷을 상징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체온, 표면적으로는 몸에 지닌 온도지만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한 해의 수고스러움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상 아닌 보상과도 같은 그러한 모든 것의 산화 과정을 통한 방출된 결과물 즉 빨간 스웨터를 꾸미고 있다.
--대바늘, 스웨터를 뜰 수 있는 도구다. 물론 뒤에 나오는 나무와 숲과는 좀 대조적으로 보인다. 하나가 굳은 물질이라면 다른 것은 생물이자 생물군을 형성한 집합체처럼 보이니까, 그러니까 하나(대바늘)는 변경할 수 없는 지렛대며 다른 것은 옮기거나 바꿀 수 있는 존재물로 수정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골목길, 소싯적 생각을 더듬을 수 있는 시적 용어다. 하지만, 뇌리 군데군데 돌아가는 그 골, 뉴런과 뉴런이 안은 여러 물질은 역시 시인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까지도 골수 깊숙한 보석을 캐내는 캐내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거리, 너와 나와의 간격쯤으로 보면 좋을 듯싶다.
--아이, 골목길에 기거한 어떤 물질로 시인이나 혹은 독자까지도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구성원, 구성원으로 보기에 좀 그렇지만 소재나 글감으로 우선 매겨본다. 아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임에는 분명하다.
--웅덩이, 마음을 상징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도 있다. 마음은 심란하다. 움푹 팬 구덩이를 만들고 비까지 내렸으니까, 물론 비는 雨가 아니라 非겠지만 그 비 또한 정으로 바꾸자 하는 어떤 동기가 필요하겠다. 마음이 평정하다면 시가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개구리, 하나의 구체다. 살아있는 생물체지만, 생물로 보지 않는다. 개와 구와 리는 한자어 표기 나름이겠지만, 우선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보아서 비를 정으로 바꾸고 혹여 그것이 정인지 비인지 가름하기는 어렵지만, 시인이 보기에는 무언가 바꾸고자 하는 바뀌어야만 하는 동기는 충분히 제공한 것 같다.
--손가락, 시는 가락이다. 나의 노래는 나의 위안이며 나의 가락으로 흐으 거저 해 본 얘기지만, 자기만의 위안은 분명한 것으로 주체적이고 독보적인 행위묘사다.
--엄마, 나를 일깨운 존재다. 그러니까 마음 여기서는 웅덩이겠지만 마음을 일깨워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그 존재는 엄마며 더 넓게 보면 이 시를 읽는 독자까지 엄마에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 그러니까 스웨터를 풀고 시를 풀고 시를 읽었다면 읽었다는 것은 이해했다는 것이고 이해가 끝나면 시는 사라지는, 옷을 짜 맞추고 옷을 짜 맞춘 주체는 결국 사라진다. 처음은 큰 존재로 서 있지만 종국은 작아졌다가 사라지는 개념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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