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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 듣는다고 했다 =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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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18회 작성일 24-09-12 21:27

본문

그래도 다 듣는다고 했다

=이기리

 

 

    레이스 커튼이 열린 창 위로 나풀거렸다. 방 한가운데에 침대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깔린 욕창 매트 위에는 할머니가 옅은 숨으로 누워있었다. 침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늘어진 피부가 뼈를 간신히 덮고 있었고 허리에 담요가 세 번 정도 감겨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내 이름을 듣자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눈을 희번덕하게 떴다.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면서 목울대를 떨었다. 쇳소리를 냈다. 눈꺼풀이 격렬하게 떨렸다. 겨우 뜬 눈을 다시는 감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조금만 더 보려고 하는 눈빛이었다. 할머니의 구겨진 손을 잡았다. 이렇게 물렁물렁한 핏줄을 몸속에 넣고 살았으니, 손이 아직 따뜻했다. 더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더 들려주고 싶었다. 할머니는 몸을 조금 떨다 다시 눈을 감았다.

 

 

   민음의 시 279 이기리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106p


 

   얼띤 드립 한 잔

    죽음의 과정을 묘사한다. 레이스는 구멍이 뻐끔뻐끔 뚫린 천이지만 마치 경주하듯 달려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죽음은 흔히 빠질 수 있는 일상사처럼 닿는다. 침대는 가구지만 침대는 가라앉은 지대에 놓인 정갈한 삶을 지지한다. 옅은 숨 쉬며 바라보는 저녁이 노을에 잠긴다. 무릎처럼 가까운 것도 없을 것이고 무릎처럼 민망하게 닿는 것도 없겠지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을 터 준다. 뼈는 핵심이다. 뼈와 살이 된다는 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늘어진 피부다. 아직은 기준에 근접하지 못한 잡설에 가깝다. 사물의 가운데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꺼운 담요로 덮은 듯 감겨오는 일, 그러나 열려 있는 봄의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는다. 죽은 자가 곧 죽을 이에게 소리 지른다. 어떤 때는 강 건너 쇳소리가 날 때도 있었다. 눈꺼풀이 격렬하게 떨리고 다시 또 눈을 감고 뜨는 일, 굴곡진 삶을 보는 일이다. 이때 다리미가 지나고 촉촉 물이 오르고 김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침대에서 다 식은 손을 어루만진다. 이름은 알려 뭐 하나! 죽음의 장에서는 그 어떤 것도 필요가 없고 이용가치도 없는 이미 닿을 수 없는 경계 너머 일이니, 비로소 할머니는 바닥에 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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