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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닦는 사람 /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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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904회 작성일 15-07-15 06:29

본문

유리 닦는 사람

 


그는 한 집안의 기둥이었고 서른 살 먹은 남자,
고층 건물의 유리를 닦고
수당을 받기 위해 더 높은 곳을 원했다.
머리가 짧고 왼손잡이였던 사람,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마에 손을 얹고 쳐다볼 때
그도 땀을 닦다가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가 떨어진 것에 대하여
안전벨트 회사에서는
이중고리가 한꺼번에 풀렸을 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다니던 용역회사에서는 흔치 않은 사고라고 말했다.
자살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말했고
그럴 수도 있겠지, 누군가 끄덕였다.
여동생은 그건 보험회사의 억지라고 말했다.
꿈자리가 사납더니.
어머니는 울면서 되풀이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장의사는 화장을 권했고
동료들은 이번 기회에 수당을 올리자고 수군거렸다.
그러는 동안 모두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이중의 안전고리가 풀리고
그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몸을 트는 순간, 세상이 문득 기울고
한순간 완전히 뒤집힌 것도,
바늘이나 쇳덩이나 떨어지는 속력이 같은 것도,
그가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던 것도,
시계처럼 튕겨 부서진 것도 사실이다.
그가 죽은 날은 기념일도 휴일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장례식이 치러졌다.
월급쟁이들은 출근을 하고
신호등은 규칙적으로 불빛을 바꾸었다.
포장도로는 딱딱하고 동상은 빛났다.
그는 검토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죽었기 때문에
의사는 천천히 걸어왔다.
구경꾼이 모여들고 아이들은 뒷골목으로 쫓겨났다.

검증이 시작되었다.
의사는 맥박을,
경찰은 시간을,
보험회사는 사고를,
용역회사는 위험수당을,
동료들은 스스로의 손금을,
가족들은 그의 푸른 나이를,
온도계는 겨울을 확인했다.
그들은 논의하고 결정지었다.
그는 죽었다.
동료들은 재빨리 돌아갔고
가족들은 천천히 돌아갔다.

유리는 맑거나 흐리거나 유리이다.

고층 건물의 어두운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들여다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말하기 위한 것도
듣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스스로 말할 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된
유리 닦는 사람을.

댓글목록

무의(無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느닷없음의 대명사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성석제는 1986년 <<문학사상>>에 바로 이 시로 등단했다. 언제나 나는 소설가 성석제가 아닌 시인 성석제를 추억하고 있다. 수많은 처녀시집들 중에 이 시집을 손에 든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이가 기형도와 ‘낱말들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문장이 살을 섞을 만큼’ 가까웠기 때문이다. 시인은 기형도와 책에 대한 특별한 약속을 했다한다. 나중에 죽는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의 책을 가지기로. 시인이 기형도의 책장 앞에 망연히 서 있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따금 죽은 자가 더 끔찍하다’며 온통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시인의 첫 시집은 아무리 의뭉스럽게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읽어도 한쪽 가슴이 저릿해져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6년여 만에 출간된 시인의 두 번째 시집(민음의 시 79, 39와 79사이의 간극이 시와 소설의 간극만큼이나 아득하다. 더구나 숫자 ‘9’라니...)을 기꺼운 마음으로 가슴에 품었으며, 운문사 그 정갈한 뜰에서 봄 향기에 취해 읽었다. 그이가 세 번째 시집을 낸다면 물론 그러한 마음으로 다시 찾을 것이다. 내겐, 그이가 살아있는 기형도이기 때문이다.


아침나절, 주방의 작은 창에 놓아둔 개운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을 마시다 그만 컵을 떨어뜨리고 만다. 바깥 유리창에 대롱대롱 매달린 두 다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며칠째 4천 세대의 바깥 유리를 청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터라 순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유리 닦는 사람>을 떠올린다.


산산이 조각난 유리컵을 어찌 처리해야할까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아니나 다를까 손을 베이고 만다. 피만 보면 아득해지는 그 오랜 병이 도져 나는 또 한번 정신을 놓았는지도 모른다.


손 그늘을 만들어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유리 닦는 사람의 형광 색 조끼에 가을 햇살이 쨍강 부서진다. 순간, 유리 닦는 사람 옆에 있는 높다란 그네를 타고 싶어진다. 그러나 못하는 것도, 못 먹는 것도, 못 입어 본 것도, 못 본 것도, 보지 못하는 것도 많은 나는 그 그네 타지 못하리란 것을 잘 안다. 차라리 시 속의 ‘유리 닦는 사람’이 되는 것이 쉽고도 쉬운 일일지 모른다


(까페 비평고원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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