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리의 포도밭 =나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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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리의 포도밭
=나금숙
만개한 꽃들은 위협이나 자책이다
오래 망설인 고해나 화해이다
어둑한 창 안에서 우리는
밖을 내다보다가
버스가 생울타리 아래를 지날 때
고개를 숙인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사슬
떠나간 이름이
햇볕에 녹아 가는 유리창을
꿀벌처럼 밀어 댈 때
봄은 무기수인 우리를 태우고 먼 길 간다
포도밭에는 꽃이 없다
공기 중에 예리한 끌을 들이대고 조각한
둥글둥글한 전리품만 가득하다
시작시인선 0506 나금숙 시집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056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로 사용한 ‘마를리의 포도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이국적인 풍경이 닿는다. 물론 마를리가 어딘지 몰라도 이 시를 읽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를리는 소리 은유며 포도밭이라 할 때 포도는 과일 포도가 아니라 길을 포장한다고 할 때 그 포도에 오히려 더 가깝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시 주체의 제유적 표현이다. 마를리에서 오는 어감은 마를 대로 말라 비튼 장소이자 끝에 ‘리’를 넣어 좀 더 심사숙고한 표현이다. 만개한 꽃은 역시 시 객체다. 그들이 만개한 것은 위협이나 자책임을 미리 못 박아 놓는다. 안 그러면 소송이라도 들어올지 모르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투자는 본인의 책임임으로 전적으로 우리는 책임 질 소지는 없습니다. 라고 하는 유튜브 주식방송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만개한 꽃들아 너희가 무슨 꽃을 더 피우더라도 나는 책임 못 진다. 마 그런 내용으로 본다. 오래 망설인 고해나 화해다. 위협과 자책 그리고 고해와 화해로 그렇다. 시를 읽다가 보면 떠오르는 상들, 어떤 때는 사람 괴로울 때도 있다. 혼자서 운 적도 있다. 인생 좀 더 열심히 좀 더 공부하지 그래 이런 생각들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이 스치어간다. 버스와 생울타리, 버스는 사람(자)을 실어나르는 교통수단이다. 자를 한꺼번에 실은 것에 대하여 우리는 택시와 구별한다. 생울타리에서 오는 느낌은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 또 리가 들어가 있다. 이때 고개 숙인다. 뭐 할 일은 따로 없으니까, 꿀벌, 꿀벌을 한자로 변용한다면 밀봉蜜蜂이다. 근데, 이 밀봉은 밀봉密封도 있다는 사실, 단단히 붙여 꼭 봉하는 일 동음이의어다. 시는 역시 무기수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것이 발한 장소는 공기, 허공일 것이며 그것은 지면에서 오른 것들임으로 전리품이라 가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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