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오병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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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오병량
종일 마른 비 내리는 소리가 전부인 바다였다 욕실에는 벌레가 누워 있고 그것은 죽은 물처럼 얌전한 얼굴, 구겨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면 혐오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미개한 해변 위에 몇 통의 편지를 찢었다 날아가는 새들, 날개 없는 새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파도가 서로의 몸을 물고 내 발끝으로 와 죽어갔다 한번 죽은 것들이 다시 돌아와 죽기를 반복하는 백사장에서 떠난 애인의 새로운 애인 따위가 그려졌다 다시 더러워지고는 했다
그대의 손등처럼 바스락거리는 벌레가 욕실에 있었다 벌레는, 곱디고운 소름 같은 어느 여인의 잘라낸 머리칼 같았다 나는 위독한 여인 하나를 약봉지처럼 접고 오래도록 펴 보았다 많은 것이 보이고 슬펐으나 한결같이 흔한 것들뿐이었다 나는 애먼 얼굴을 거울 안에 그려두었다 잘린 머리칼을 제자리에 붙여주면 어여쁘고 흉한, 평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독한 미소의 여자가 커다란 가위를 든 채 거울 밖에 있었다 이 위태로움을 어찌 두고 갈 수 있을까?
그대여,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고 쓴 그대의 편지를 두어 번 더 기억하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슬픔에 비겁했다. 생각할수록 자꾸 여며지는 백사장 말하자면 그건 소용없는 커튼, 소용없는 커튼은 창밖을 곤히 지웠다 도무지 펄럭이지 않았다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였다 죽을 힘을 다해 죽는 연습을 하는 최초의 생명 같았다
문학동네시인선 212 오병량 시집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 016-017p
얼띤感想文
묻다, 어떠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따지는 일도 다른 물체가 들러붙거나 흔적이 남는 것도 흙이나 다른 물건 속에 넣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묻는 일이다. 뭐 이 시에서는 이래저래 다 맞는 말인 거 같다. 마음에서 오고 닿고 또 물으니 거기서 온 것에 대해서 영영 묻어 놓는 일은 시의 역할이다. 그나저나 바깥을 이리 잘 묘사한 시도 잘 없을 거 같다. 수려한 문장을 본다. 종일 마른 비 내리는 소리가 전부인 바다였다. 비와 바다를 비교해서 설명해 주고 있고 벌레가 누워 있고 그것은 죽은 물처럼 얌전한 얼굴에서 벌레와 얼굴은 대조가 된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 혐오로 발전하는 모습까지 이는 바다에 당도하지 못한 미개한 해변이자 편지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바다는 원대하고 넓으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시적 상징물인 셈이다. 날아가는 새 물론 영혼이겠지만 폭죽처럼 터진다는 직유에서 그만 무언가 알 톡톡 터트린 기분까지 들고 한번 죽은 것들이 다시 돌아와 죽기를 반복하는 백사장에서 파도처럼 지우고 또 쓸어내려 간 것들이 언뜻 스치며 지나가기도 한다. 애인의 새로운 애인 따위, 그렇다 문장 하나에 꽂혀 아예 시리즈로 사버린 결과다. 더욱 마음은 맑아야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럽혀지는 것도 마음이겠다. 그러므로 단지 쓰는 것에 안주하고 비처럼 하루를 재우는 일 묻다, 더 있을까? 묻다. 내 마음에 물어본다. 머리칼, 이는 검정이며 글을 상징한다. 위독한 여인 하나를 약봉지처럼 접고 오래도록 펴 보았다. 지면 한 장이 뭐라고 어쩌면 그것은 한때 앓은 감기처럼 마음을 낫게 하거나 그러나 편두통처럼 따끔거리기도 한다. 아! 그때 왜 그런 표현을 했을까, 누가 읽지는 않았겠지 하며 그러나 대서특필大書特筆처럼 방榜처럼 버젓이 공개한 일들에 대해서 그러나 아무도 소를 제기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기도 한다. 그대여, 물론 그대도 곧 죽음을 맛볼 것이다. 슬픔은 바닥에서 일어나고 커튼처럼 백사장은 파도로 일괄하겠지. 그것은 다시 바다로 보내질 거야, 저 깊은 바다 어디에 묻어 놓은 영혼 하나가 있었다는 것을 먼 훗날 누가 꺼내 볼 일은 있으려나 하면서, 여기 또 하나 순장 처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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