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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색을 갖추다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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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47회 작성일 23-03-01 14:52

본문

구색을 갖추다

=김경미

 

 

여행 트렁크에서 쏟아져 나오는 몇몇 나라의 낙엽들

 

양털 같은 빗방울들

 

채워도 비워도 똑같은 이력서

 

첫인사만 새까맣게 되풀이하는 외국어 교재

 

벽지에 붙여 놓은 결심이 아닌 후회들

피요르드식 해안으로 점철된 사랑 아니 이별

 

풍선에 매달아 멀리 보내 줘 풍선장(風扇葬)

 

처음 대 보는 석고붕대

 

대답없는 전화번호들

걸지 않았으므로

 

   얼띤感想文

    시제 구색을 갖추다는 시적 묘사로 이룬 시로 읽었다. 여기서 구색은 우리가 흔히 쓰는 具色이 아니라 口濇에 가깝다. 그러니까 입안이 텁텁하고 껄끄러운 증상 같은 것이다. 여행 트렁크에서 쏟아져 나오는 몇몇 나라의 낙엽들, 여행은 즐겁지만 피곤한 일이며 그 속에 묻은 낙엽은 조금이라도 만지거나 밟으면 부서지겠다. 양털 같은 빗방울들, 양털처럼 부드러운 것도 없을 것이며 빗방울은 온몸 적실 수 있을 만큼 하나의 구체를 상징한다. 채워도 비워도 똑같은 이력서, 있으나 마나 하는 존재며 첫인사만 새까맣게 되풀이하는 외국어 교재, 도돌이표다. 다시 돌아와 자꾸 묻고 가는 시다. 벽지에 붙여 놓은 결심이 아닌 후회며 피요르드식 해안처럼 굴곡 된 사랑이거나 이별이다. 풍선에 매달아 멀리 보낸 듯 제갈 곳 뻗어 나간 바람결이며 석고붕대처럼 흰 종이에 굳은 시, 연락하고 싶지도 않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다가선 한 편의 시처럼 입안은 텁텁하고 껄끄러운 것이 시며 인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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