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들 /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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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들 / 심보선
우리는 초대장 없이 같은 숲에 모여들었다. 봄에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옮겨 심어 시절의 문란을 풍미했고 여름에는 말과 과실을 바꿔 침묵이 동그랗게 잘 여물도록 했다. 가을에는 최선을 다해 혼기(婚期)로부터 달아났으며 겨울에는 인간의 발자국 아닌 것들이 난수표처럼 찍힌 눈밭을 헤맸다. 밤마다 각자의 사타구니에서 갓 구운 달빛을 꺼내 자랑하던 우리. 다시는 볼 수 없을 처녀 총각으로 헤어진 우리. 세월은 흐르고, 엽서 속 글자 수는 줄어들고, 불운과 행운의 차이는 사라져갔다. 이제 우리는 지친 노새처럼 노변에 앉아 쉬고 있다. 청춘을 제외한 나머지 생에 대해 우리는 너무 불충실하였다. 우리는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만 안심한다. 이 세상에 없는 숲의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얼띤感想文
인간 세상 그 우리도 우리며, 시집에 든 시 속, 문구와 시어도 우리다. 봄 같은 청년 시절이 있었다. 뭐든지 다 할 것 같았고 또 그렇게 했고 여름에는 뜨거운 그 영업력의 말발로 단단한 과실을 챙기기도 했으며 더 나가 나무를 보듬듯 사업을 잘 다독거렸다. 가을에는 최선을 다해 더 늦기 전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다. 겨울에는 뼈가 으스러지고 허리가 굽어 모든 것이 난수표처럼 풀기 어려운 시절임을 그때 깨달았다. 밤마다 갓 구운 꿈을 꺼내 자랑했던 시절은 다 어디 갔는가! 다시는 돌아오질 않을 젊음의 그 시절 말이다. 세월은 흘러 더 남은 삶의 잎새는 줄어들건만, 불운과 행운의 차이는 이제는 없다. 거저 황혼길 어느 노변에 앉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파일 뿐 젊은 시절을 제외한 나머지 생에 대해서 너무 불충실했던 나의 과거가 다만 후회스럽다. 우리는 지금 이 인생이 아닌 곳을 향해 도로 안심하느니 마저 죽음을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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