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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방화 /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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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4회 작성일 22-05-29 00:02

본문

얼음 속에서 나는 불을 지른다

기침 멎은 밤

우리들의 도탄의 중심으로

전신의 눈을 밀어 보내며

가장 단단한 아픔을 캐어낸다

신기한 머리털이 무섭게 자라버린

겨울의 어두운 옷자락은 마을을 닫고

자욱한 실의의 눈발들이

철근의 팔뚝을 번득이며

하얗게 자빠진 시대의 등뼈에

캄캄한 노래를 묻고

천 길 눈구렁에 빠진 이웃들의 목소리

없는 길을 헤매이는

동상의 발은 돌아오지 않는다

미끄러운 경험

그 긴 시간의 골목길을

열 개의 더듬이로 기어간다

이웃들의 잠 속에서도 대리석의 웃음이 피고

질기고 질긴 밧줄이 석상을 묶는

숨막히는 우리들의 풍속을 넘어서

차갑게 빛나는 거대한 식기

몇 세기의 어둠을 캐어낸다

단순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든다

안개처럼 지상을 내려 덮는 아편꽃

밀폐된 유리 안에서

사람들이 인조의 털옷을 두껍게 입고

견고한 의자에 앉아 근시안이 되고 있을 때

은빛 현이 끊어진 바다

눈물의 뿌리는 썩고

우리들은 어둠을 알았다


영하의 자정, 천장 얕은 불면의 방에서

헝클린 머리칼에 불을 지른다

뼛속으로 흐르는 저 외로운 기름의 행렬

벽을 밀어낸 거울의 안쪽

안경알을 닦으며 넘어지며 걸어온 스물다섯의 해의

썰물진 낮은 보행과

낯선 도시마다 잘려나간 유산이 보이고

깊은 돌층계로 낡은 우산이 굴러 내리는 소리

알 수 없는 미궁의 빗소리도 들린다

책갈피마다 끼워둔 따가운 인식

나는 일어선다

밖에서 겨울의 썰렁한 웃음소리가 집을 흔들고

해 뜨는 쪽에서 못물이 옴찍도 않는 동안

멀리 달려간 아이들이

저녁의 지평에서 보내는 돌개바람은

나를 가볍게 무너뜨린다

바람벽을 막은 빛낡은 신문지를 뜯어내고

귀먹은 손이 관능의 낱말들을 쓸어 모은다

맨발로 불을 딛고 밤새워 뼈를 추리며

나는 드디어 무서운 꿈을 갖는다


얼어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부릅뜨고 불을 낳는다

빈 들녘 끝을 헤매는 한 마리 이리의 울음소리가

푸른 도끼날에 묻어 나오고

잃어버린 연대도 장작처럼 쪼개져 쌓인다

간음당한 우리들의 자유를 찍어 넘기고

썩어버린 법정의 기둥도

이웃들의 소심한 울타리도 태워버린다

진실한 숯을 얻기 위해 나무를 태우고

죽고 또 죽기 위해

천 년의 고목을 쓰러뜨린다

불꽃이여

가장 아픈 상처에서 열렬한 불꽃이여

오오 몸서리치는 나의 사랑을 삶을

어버이를 버리고 옛집을 불사른다

한밤중 뼈저린 불길은 어둠을 사르고

잿더미를 흩날리는 바람 속에서

아프게 일어서는 불굴의 깃털

무성한 겨울의 정수리, 도탄의 중심에서

나는 오늘

외롭게 죄를 저지른다.


창비1992 김영석[썩지 않는 슬픔]

감상평 : 마지막 행에서 [외롭게 죄를 저지른다]에 시선이 멈춘다

왜 하필 그 많은 단어 중에서 죄라고 단정을 지은 것일까

시인은 죄인이 돼서는 아니될 이유가 없지만 시인은 죄를 시인하는 것이지만

나는 끝끝내 불가해의 영역에서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라고 인식하며 꼼꼼히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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