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색/안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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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색
안미옥
폭력은 밝은 곳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에 살았던 적도 있다
보이는 것도 흰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도 흰 것일 때
겹겹의 백지처럼
어두운 곳엔 없는 기도를 했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어른이 될까
받고 싶지 않은 편지 뭉치를 받아들고서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매일 그게 궁금했다
편지를 읽은 후엔
그다음엔
따뜻한 우유를 두 손에 감싸쥐고
울지 않아도 될까
잎이 다 타버린 나무처럼
앉아서
편지를 열고
첫 문장을 읽는다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침대의 밑, 겨울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깨지기 직전의 시간을 모자처럼 눌러쓰고
얼굴 끝까지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그릇들
더 깊은 얼굴이 되면
따뜻한 손을 갖게 될까
지우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엔 반드시
지우고 싶은 색이 있다
가족의 색
가족의 문
가족의 반성과 가족의 울음 가족의 일상 가족의 방식 가족의 손과 가족의 얼굴 가족의 정지
그리고 가족의 가족
알약은 깊은 곳에서 녹는다
녹는 곳엔 바닥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말이다
얼굴에 그린 그림을 가면처럼 쓰고 있던 아이들이
다 지워질 때까지
- 시집 <온>에서, 2017 -
- 우리는 가족의 색깔 속에서 산다.
서로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때론 내가 먼저 지우기도 하고,
또 때론 내가 지워지기도 한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고,
또 어떤 것은 영원히 모른 채로 살기도 한다.
그게 가족의 색이다.
그러나 각자가 쓴 문장의 결말은 자신의 몫이다.
전체이면서 동시에 부분(단독자)이기도 한 가족.
우리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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