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박서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빈집
박서영
댓돌 위에 나란히 놓인 신발 한 켤레,
빨랫줄엔 며칠째 걷지 않은 듯한 옷과 이불,
늦은 봄날 개복숭아 나무의 병실을 떠나
기어코 짓뭉개져 가는 꽃잎들,
들어가야 할 곳과 빠져나와야 할 곳이
점점 같아지는 37세,
시간의 계곡을 질주하는 바람,
더 이상 내게 낙원의 개 짖는 소리는 들려주지 마!
내용 없이 울어대는 새 몇 마리,
저녁이 검은 자루처럼 우리를 덮는다
-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에서, 2019 -
- 점점 채워가는 집이 되는 나이가 있고
어느덧 빈집이 되는 나이가 있다.
어느 세월엔가 개 짖는 소리도, 새 소리도 내용 없이 들리는 저녁이 있다.
어떤, 그런, 순간의 내가 거기에 있다.
댓돌 위에, 빨랫줄 위에, 꽃잎 위에, 질주하는 바람 속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