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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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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5회 작성일 21-05-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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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박목월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 시집 <蘭.其他(난.기타)>에서, 1959 -












 * 오늘 숲길에서 아름드리 물푸레나무 몸통을 침략자처럼 침공해선,

   빼곡히 들러붙어 있던 푸른 이끼를 보며,

   저것도 시가 될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이 시가 떠올랐다.

   고교 시절 교정의 히말라야시다 밑에서 가슴 벅차게 읽었던 그 시가.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시란 이런 것이로구나.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로구나.

   좋은 시는 오랜 세월 잊고 지내다가도 언제든지 나를 방문해주는구나.

   위로해 주는구나.

   집에 오자마자 시를 찾아 읽고 또 읽었다.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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