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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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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72회 작성일 20-12-06 19:54

본문

절망(絶望)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열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시집 <사랑의 변주곡>에서, 1990 -




*  시집의 발간 연도는 1990년이지만 이 시의 씌어진 해는 1965년이다.

   풍경, 곰팡이, 여름, 속도, 졸열, 수치 이들의 공통점은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반성 없는 삶을 절망이라고 부르고 있다.

   키에르 케고르식으로 말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김수영식으로 말하면

   그 절망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반성하는 삶은 행복이 그 손에 쥐어진다.

   그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바람처럼, 구원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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