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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각(水刻) / 오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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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93회 작성일 18-09-01 12:00

본문

수각(水刻) / 오영록

 

 

    비 그친 오후, 웅덩이

    한 뼘도 안 되는 수심으로 하늘이며

    뒷산이며 키 큰 가로수가 수직으로 빠졌다

    구름이 가면 가는 데로 깎아 담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낮은 몸으로 가장 높은 것을 어르고 있다

    높고 낮은 것을 한 뼘 속으로 품어

    높아야 한 뼘 낮아야 한 뼘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산수화 한 폭 쳐 놓고

    빼놓을 성싶은 못난 나까지

    마음을 한번 헹구라는 듯 담고 있다

    그것도 한 뼘의 깊이로

    높고 낮음에 그 무엇도 자유 없음을 말하듯

    화사한 연분홍 벚꽃도

    오색찬란한 공작의 날개도

    흑백으로 음각하고 있다

 

 

 

鵲巢感想文

     시제 수각水刻은 물에 비친 사물의 그림자다. 수각數刻에 선생의 수각水刻을 읽고 있으면 수각修覺된다. 평상시 같으면 정치뉴스를 들으며 운전대를 잡았다만, 오늘 아침은 라디오에 흐르는 노래를 들었다. 올드 팝송이었다. 이삼십 년 전에도 유행했던 그 노래가 잠시 나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참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옛사람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세상사는 사람들을 보라! 잘나고 못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부유한 사람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 있고 사상이 있는가 하면 각기 다른 이념에 논쟁만 들끓는 곳이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없고 또 알고 보면 그 모르는 것이 엄청난 벽인 세상, 그러나 우리의 유한한 삶 앞에는 모두 공평한 시간에 잠시 흐르는 라디오 음악소리는 그 어떤 이념도 없고 논쟁도 아닌 거저 편안한 수심愁心을 잠들게 한다.

     음악을 들으며 출근했다. 오늘은 커피 강좌가 있는 날이라 강좌소개와 짧은 콩트를 날렸다. 21년째 걷고 있는 삶을 30분간 모두 할 순 없지만, 참석한 인원은 모두 또렷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하면 그래도 처음 걷는 사람보다 또 이 길을 걷겠다고 오는 사람보다도 나는 많은 길을 걸었다. 알고 보면 종이 한 장도 안 되는 깊이다. 水心에 비치는 사물의 그림자만큼 그 깊이는 얇고 표면적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이러한 흑백논리도 시간과 고투뿐이며 진정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인내만이 있을 뿐이었다. 뒷면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그림자만 서려 있다 해도 이들 눈앞은 화려한 꽃이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한 잔의 커피를 여유롭게 마실 수 있는 공간과 사색의 깊이를 즐길 수 있다면 더불어 나누는 공동의 장을 만들고 이끄는 일만이 가장 행복한 일임을 말이다.

     수심에 비치는 수각이다. 바람이 불고 이랑이 인다. 산수화 한 폭 수놓고 못난 나까지 옆에다 놓으며 마음을 헹군다.

 

     先生를 읽으니 이성선의 詩人가 생각나 필사해본다.

 

     물을 건너다가 / 이성선

 

     개울물을 건너는 아침

     징검다리에 엎드려 물을 마시다가

     문득 물에 몸 비치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마신다.

     聖人을 먹는다.

     물에 떠내려 오는 황소를 먹는다.

     초가집 한 채도 먹는다.

     문살에 비치는 호롱불빛

     여물 써는 소리

     천도복숭아 가지에 매달린 아이들

     감자꽃 사이에서 웃고 있는 할아버지

     靈穴寺에서 막 문 열고 나오는

     스님도 하나 먹는다.

     먹고 그냥 앉아서

     두 다리 사이로 얼굴을 디밀고

     거꾸로 바라본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세상

     내 안일까 밖일까

     저 아래

     염소 한 마리가 또 둑에서 내려와

     궁둥이를 하늘로 뻗치고

     물을 마시고 있다.

     나를 먹는 모양이다.

 

     돌고 도는 세상사 시인은 물에 보이는 그림자에 순간 깨쳤다. 우주가 집이라고 했던 어느 선사의 말도 있었다. 따듯한 세상이라 생각하면 한없이 따뜻한 곳, 마음은 물처럼 수각水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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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록 강원도 횡성 다시올문학신인상 외 다수 시마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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