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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고 싶은 길 / 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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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이면수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70회 작성일 17-05-01 12:55

본문

같이 살고 싶은 길 / 조정권(1949~ )


1

일 년 중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혼자 단풍 드는 길
더디더디 들지만 찬비 떨어지면 붉은빛 지워지는 길
아니 지워버리는 길
그런 길 하나 저녁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늦가을 청평쯤에서 가평으로 차 몰고 가다 바람 세워놓고
물어본 길
목적지 없이 들어가 본 외길
땅에 흘러 다니는 단풍잎들만 길 쓸고 있는 길

일년 내내 숨어 있다가 한 열흘쯤 사람들한테 들키는 길
그런 길 하나 늘그막에 데리고 같이 살아주고 싶다

2

이 겨울 흰 붓을 쥐고 청평으로 가서 마을도 지우고 길들도 지우고
북한강의 나무들도 지우고
김 나는 연통 서너 개만 남겨놓고
온종일
마을과
언 강과
낙엽 쌓인 숲을 지운다.
그러나 내내 지우지 못하는 길이 있다.

약간은 구형인 승용차 바큇자국과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늙어버린
남자와 여자가 걷다가 걷다가 더 가지 않고 온 길이다


시집『떠도는 몸들』창비, 2005.


감상

어떤 날은 쭈욱 둘이키고,
어떤 날은 홀짝홀짝 마시고
어떤 날은 후룩후룩 마신다.
차가운 세상 바람에 꽁꽁 언 마음 녹여주는 뜨거운 국물처럼,
술처럼.

어떤 날은 꼭꼭 씹어 삼킨다.
내 뼈에서 발라낸 아프고 떨리는
살 같은
죽어서 남기고 싶은 사리 같은
이런 시 한 편,

또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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