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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부력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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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78회 작성일 17-05-02 06:04

본문

저녁의 부력 / 김재근

1,
물속 저녁이 어두워지면
거미는 지상으로 내려온다
자신의 고독을 찾아 천천히 그물을 내리는 것이다
미로속, 미아가 되어
지구의 차가운 물속 저녁으로 눈동자를 풀어놓는 것이다

몸이라는 슬픈악기, 출렁이는 몸속, 물의 음악,

북극을 감싸는 오로라의 젖은 메아리처럼
허공에 매달려
시간이 무뎌질 때까지
거미는, 스스로를 배웅하는 것이다

2,
비행운을 그리며 날아가는 영혼들
어느 물속에서 잠들까

태어나 처음 듣는 울음에 귀가 놀라듯
태어나 처음 보는 눈동자에 눈이 놀라듯

자신에게숨을 수 없다

거미는
스스로의 몸으로
허공에 자신을 염하는것이다

3,
물속 지느러미처럼 느린 저녁이 오고
늦출 수 없는 질문처럼, 말할 수 없는 대답처럼
스스로 듣는 거미의 잠
잠 속이 밝아 잠들지 않는데
눈알을 태우는 몸속 까마득한 열기, 들을 수 없다
촉수를 뒤덮는 시간, 머물 수 없다

어떤 부력이 저녁을 떠오르게 할까
허공의 기억만으로 흐려지는 여기는 누구의 행성인지
대답할 수 없다
체위를 바꾼 기억이 없기에

물속에 고이는 게
잘못 흘린 양수 같아
매일 젖은 몸을 말리며
매일 젖은 눈을 더듬으며
허공을 깁는 것이다

거미줄에 닿아 식어버린 지구의 저녁
저녁의 부력이란 거미의 울음 같아 만질수록 쓸쓸하다

# 감상
  저녁 무렵 물가에 드리워진 거미줄과 거미에서 자아내는
  낯선 상상력의 전이와 확산이 두드러진 시,
  거미의 하나하나 동작을 통해 거시적 세계와 미시적 세계
  를 들여다 보며 엮어나가는 세밀한 힘이 대단하다
  거미의 동작에서 미로를 헤매는 독단자처럼, 허공의 높낮
  이를 오르내리며 출렁이는 고독감, 단절감을 느낄 수 있다
  거미와 거미줄의 관계에서 우리 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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