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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여관, 그리고 한평생 / 심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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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위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90회 작성일 16-08-05 16:54

본문

편지, 여관, 그리고 한평생

후회는 한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
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
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
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
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
에 없다
한평생은 그런 것이다

*감상

대부분 우리들 집 책장에는 아주 두꺼운, 그리고 아주 오래 된 사전 한 권씩은 있을 것입니다. 잘 펴보지도
먼지를 닦아 내지도 않지만 이사를 할 때면 반드시 챙겨가곤 합니다. 저에게 있어 심재휘 시인의 시집은
사전과도 같습니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펴보기를 망설였던, 지금껏 잊고 지나쳐온 우리들의 삶.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간다는 것' '편지를 쓰는 행위'를 통해 지나온 시간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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