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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골 시편(넝쿨의 힘) / 김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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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71회 작성일 16-06-1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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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골 시편 / 김신용
  - 넝쿨위 힘

집 앞, 언덕배기에 서 있는 감나무에 호박 한 덩이가 열렸다
언덕 밑 밭 둔덕에 심어놓았던 호박의 넝쿨이, 여름 내내 기어올라 가지에 매달아 놓은것
잎이 무성할 때는 눈에도 잘 띄지도 않더니
잎 지고 나니, 등걸에 끈질기게 뻗어오른 넝쿨의 궤적이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무거운 짐 지고 飛階를 오르느라 힘겨웠겠다, 저 넝쿨
늦가을 서리가 내렸는데도 공중에 커다랗게 떠 있는 것을 보면
한여름 내내 모래자갈 저날라 골조공사를 한 것 같다, 호박의 넝쿨
땅바닥을 기면 편안히 열매 맺을 수도 닜을 텐데
밭 둔덕의 부드러운 풀위에 얹어놓을 수도 있을 텐데
하필이면 가파른 언덕 위의 가지에 아슬아슬 매달아놓았을까? 저 호박의 넝쿨
그것을 보며 얼마나 공중정원을 짓고 싶었으면- 하고 비웃을 수도 있는 일
허공에 덩그라니 매달린 그 사상누각을 보며, 혀를 찰 수도 있는 일
그러나 넝쿨은 그곳에 길이 있었기에 걸어갔을 것이다
낭떠러지든 허구렁이든 다만 길이 있엇기에 뻗어 갔을 것이다
모래바람 불어, 모래무덤이 생겼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생기는 시막을
걸어간 발자국들이 비단길을 만들었듯이
그 길이, 누란을 건설했듯이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가, 저렇게 허공에 열매를 매달아놓았을 것이다, 저 넝쿨
가을이 와, 자신은 마른 새끼처럼 쇠잔해져가면서도
그 끈질긴 집념의 집요한 포복으로, 불가능이라는 것의 등짝에
마치 달인듯, 동그랗게 호박 한 덩이를 떠올려 놓았을 것이다
오늘, 조심스레 사다리 놓고 올라가, 저 호박을 따리
오래도록 옹기그릇에 받쳐 방에 장식해두리, 저, 기어가는 것들의 힘

# 감상
  일기 쓰듯, 묘사 보다는 진술로 쓴 시인데,
  가만히 앉아 눈을 감으면 물르흐르듯 쓰여진 시구들이 마음 속을
  헤집고 다닌다
  - 낭떠러지든 허구렁이든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 갔을 것이다
  - 모래바람 불어, 모래무덤이 생겼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생기는 시막을
  - 걸어간 발자국들이 비단길을 만들었듯이
  - 그 길이 누란을 건설했듯이
  이 부분이 이 시의 화룡정점인데
  이 행을 읽노라면 깊은 산 속에서 아라한의 목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인생의 어떤 깨달음이 들려오는것 같다
  김신용 시인은 농사도 짓고 지게를 지고 날품팔이도 한 인생 밑 바닥을
  살아 본 시인이다
  그의 시 (공중화장실에서의 정사)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도져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밑바닥 인생의 삶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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