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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 한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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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391회 작성일 16-05-08 07:57

본문

밤비 / 한용국

나뭇잎에서 빗방울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다
그 순간 내 이마를 휘돌아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헤엄쳐 가는
물고기의 은빛 꼬리를 본 것도 같았다

나는 물방울을 그리는 화가를 알고 있다
물방울들이 벼랑에 얼음조각처럼 맺혀 있었다
쌀알에 불경을 새긴다는 승려도 알고 있다
반야심경을 쌀 한 톨에다 새겨 넣는다고 했다
맨 눈으로는 못보고 마음의 돋보기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막 이마를 때리고 지나간 물방울 속으로
밤의 벼랑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한 방울의 눈물 속으로
팔만 사천 경전을 새겨놓은 승려의 한 톨 심장 속으로
물고기는 은빛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갔을 것이다

나뭇잎들이 저마다 빗소리에 솨아솨아 귀를 열기 시작하고
내 눈 속에 먹을 잔뜩 머금은 한지 한 쪽이 젖어내리고
있었다

* 한용국 : 2008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댓글목록

시앙보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수도승의 성찰을 '한 방울' 사리로 압축한 시편을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용을 휘어잡은 '밤비' 제목 또한 '방울'처럼 보태고 뺄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라틴어 구약성서 중 솔로몬의 시편 한쪽을 밀알 하나에 새겼다는 수도승이 떠오릅니다.

정진은 모름지기 공통분모라는 사실에서 숙연해집니다.

湖巖님의 댓글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렇습니다
한방울의 물방울에 팔만 사천 경전을 새겨 넣는 승려나
솔로몬 시편 한쪽을 밀알에 새겼다는수도승이나
정진은 모름지기 아름답고 숙연합나다
시앙보르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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