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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 관한 명상 /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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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917회 작성일 16-05-14 00:44

본문

개에 관한 명상    / 이응준


늑대의 손자. 아버지를 닮지 못해
들에서 정원으로 추방당한
들개의 아우. 가족을 이해하지 못해
날 것으로부터 밥 찌꺼기로
식성이 변한
용도가 아주 다양하고
주인을 속일 줄 모르며
원망은 더 더욱 알지 못하는
저 동물답지 못하게 호화스러운 잡종의 개들
저 어벙하게 팔려만 가는 순종의 개들

하지만 나는 여러 번 보아 왔지 않았는가.
가끔가다 제 새끼들이
이 집 저 집 흩어지게 되면
맥없는 목소리로 키 큰 양옥집 사이에서,
우리 이웃의 대문 앞에서,
늑대의 자손임을
들개의 아우였음을 애원하는
아주 미묘한 후회들을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죄라는 것은 더러워질 때부터
더러웠다는 것.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본래의 제 모습을 모르는
것임을. 잘 가라

늑대의 손자 들개의 아우
영원하라. 늘 곁에 있어 주어 고맙고도
한심한 개의 자손 개의 아우들이여

----------------
*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시집 수록작품.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님을 꽤 오래 전에 소설로 만났다. 시적인 문체와 감응성 탓에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국내외 소설가는 '시인 겸 소설가' 출신이 주가 됐다.
간만에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라는 그의 시집을 대하자니 떨리던 독서가 기억난다.

위의 시는, 낭만파 이응준의 계보에서 조금 이탈한다. 그러니까 김수영 후기 쪽에 가깝다.
'개'로 시작해서 '개'로 끝나지만 귀가 휘어진 영양탕용 멍멍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조작과 주장의 언설에서 한참 비켜선다. '죄'라는 원시부터 본래를 상실한 '현재'까지
으르렁대는 것이다. 어설프게 대들었다가 물리지 마시옵길.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누군 개같은 인생을 위하여,

누군 개 같지 않은 인생을 위하여.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profile_image 두무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늑대의 손자, 개의 아우!
이어지는 내용이 무척 흥미를 끕니다
감상문도 파도의 굽이 만큼
조금도 뜻을 단언하게 어렵게 만드는 군요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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