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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의 비밀 / 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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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865회 작성일 15-11-27 15:37

본문

가구의 비밀 / 고영

구청 앞 광장에 벼룩시장이 섰다

트럭에 실려 온 중가구들이 침묵을 부리고 있다

안방이나 거실 혹은 서재에서

한 집안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던 각종 가구들,

이를테면

주인여자의 이상야릇한 체위를 거부하던 소파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비추다 쫓겨난 화장대 거울

(현명한 거울은 주인의 기분에 맞춰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부도난 수표를  받아먹고 헛배가 불렀던 대형금고.......

오래된 가구일수록 비밀도 많고 사연도 많다

저 가구들이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무거운 입 때문이다

가구에게 침묵은 곧 신용이다

가구들이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안심하고 가구의 남은 생에 대해 흥정할 것이다

간혹 비밀이 탄로나 신세를 망친 자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이 지상의 가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은연중에 말을 흘렸기 때문이다

하늘의 오래된 가구인 해와달 그리고 별이

지금껏 온 누리의 희망이 되고 있는 건

단 한 번도 천기를 누설하지 않은 침묵 때문이다


* 고영 : 2003년 월간 <현대시> 로 등단

댓글목록

나문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내 언젠가는 기어이 하늘이 꽁꽁 숨겨둔 비밀하나쯤 알아내어
만천하에 누설하리라 별렀더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그러고도
지상의 반듯한 가구로 남을 수 있을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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