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표정/ 정민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글의 표정/ 정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2,768회 작성일 15-11-25 23:25

본문

글의 표정

정민

상이 찌푸려지는 글이 있고, 가슴이 콩당대는 글이 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다 보인다. 시를 읽다가 그 마음이 고마워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제 생각만 강요하는 서슬에 질려 읽다 말고 책을 덮기도 한다. 저도 모를 소리만 잔뜩 늘어놓아 짜증이 나는 글이 있는가 하면, 글 쓸 때의 환호작약했을 광경이 행간으로 훤히 보이는 글도 있다.
지난 번 교내의 학술 발표 때에는 결론도 없이 말장난만 되풀이 하는 발표자에게 몹시 화를 내고 말았다. 너무도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다른 일 접어두고 앉아 그런 발표나 듣고 있는 것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없는 생각 쥐어짜느라 쓰면서 힘들고, 무슨 소린지 몰라 들어서 괴로운 그런 공부를 왜 하느냐고 앙칼지게 따졌던 것 같다.
암호문과 다를 바 없는 시, 자기도취에 빠진 소설, 목적도 없이 생각 사이를 헤매는 비평. 이들의 공통점은 소통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듣던 말든 혼자 떠드는 잠꼬대는 시가 아니라 배설물이다. 소설가도 종종 횡설수설을 의식의 흐름으로 착각하고, 해괴망칙을 실험정신으로 오해한다. 이런 작품들은 쓰기도 힘들었겠지만 읽기가 더 괴롭다.
정지용은 〈시와 발표〉란 글에서 “시가 시로서 온전히 제자리가 돌아빠지는 것은 차라리 꽃이 봉오리를 머금듯 꾀꼬리 목청이 제철에 트이듯 아기가 열 달이 차서 태반을 돌아 탄생하듯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편의 흡족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신고(辛苦)는 얼마든지 감수할 일이되, 되지 않고 익지 않은 것을 쥐어짜 이 아니 좋으냐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적반하장의 우격다짐이 아닐 수 없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의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인터뷰를 읽었다. “작품 속에 이순신의 한 때 애인이었던 여진의 죽음이 나온다. 그녀의 시체를 누가 끌고 온다. 묘사 문장을 다섯 장쯤 썼다가 모두 다 버렸다. 그리고 단 한 문장으로 바꿨다. ‘내다 버려라.’ 그리고 그날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썼다. 너무 좋았다. 원고지 100장 쓴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내가 쓰다 버린 것을 독자가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는 원고지 100장과 맞먹은 다섯 글자를 얻고 기뻤다고 했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칼끝 같은 긴장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 한 마디로 다 알 수 있었다. 그 행간에 녹아든 작가의 한숨과 피땀과 환호도.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것은 피를 말리는 고통이지만, 꼴 지워지지 않던 생각의 덩어리들이 하나하나 형상을 갖춰갈 때 느끼는 희열은 어떤 도락적 쾌감에 못지않다.
논문을 쓸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글을 쓰다 생각이 꽉 막혀 조금도 나아갈 수 없을 때, 머리나 식히자고 우연히 펴든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책갈피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원하는 정보들이 줄을 지어 나온다. 이들은 마치 왜 이제야 내게 눈길을 주느냐고 원망하는 것만 같다. 이럴 때 나는 괴성을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연구실을 왔다갔다 한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 같다. 며칠 째 막혀있던 생각은 봇물이 터져, 이제 자판을 두드리는 손의 속도도 그 서슬을 따라잡지 못한다. 밥상에 앉아 밥을 기다리가다 섬광처럼 스친 생각에 앉은 자리에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몇 장의 글을 숨도 못 쉬고 쓴다. 이럴 때는 벼락을 맞은 것 같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그저 오지 않는다. 몇날 며칠을 고심으로 끙끙 앓고, 중증의 변비 환자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이것을 어떻게 하기 전에는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 끝에만 찾아온다. 뒤에 그 글을 다시 읽어도 그때의 감격이 새삼스럽다. 읽는 이에게도 그런 호흡은 어김없이 전달된다. 여기에 글 쓰는 일의 보람과 희열이 있다. 나도 모를 글을 남이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쁘지 않은데 남이 즐거울 리가 없다. 재미있어서 쓴 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라야 읽을 맛이 난다.

*시는 아닌데, 어디에다 올리면 좋을지 몰라서 이곳에 올렸습니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혹시.. 내가 아는 정민 평론가? - 동명이인도 많아서

요즘은 이것보다 더 산문적인 시도 많은 것이어서  (웃음)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영선 시인님,

나문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양대 국문과 교수,
한시미학산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다산 지식경영법, 책 읽는 소리...등등등 쓴 사람,
할 수만 있다면 연애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ㅎㅎ
맞나요, 아시는 분?

나문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 거기 계시네요?ㅎㅎ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이신가요?
제가 참 존경하는 분입니다.
탐나는 사람, 그리운 사람.. 뭐 그렇습니다..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는, 책으로만 사모하는 그런분입니다.ㅎ

Total 5,011건 97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열람중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69 11-25
21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57 11-25
209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00 11-24
20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4 11-21
20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4 11-20
20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0 11-19
20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2 11-17
204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29 11-16
20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6 11-15
202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18 11-15
201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0 11-13
200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80 11-13
199 김선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98 11-12
19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8 11-12
197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4 11-12
19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2 11-11
195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58 11-10
19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39 11-09
193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10 11-09
19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80 11-08
191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85 11-08
19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4 11-07
189 지금부터 시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09 11-07
188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00 11-06
18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9 11-05
18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8 11-03
185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9 11-01
18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13 10-31
18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42 10-30
18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05 10-29
181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59 10-28
18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0 10-27
179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50 10-26
178
一抹靑山 댓글+ 4
강경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34 10-23
177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61 10-23
17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81 10-23
175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0 10-23
17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12 10-22
173 하늘은쪽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55 10-22
17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97 10-21
171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00 10-19
17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44 10-19
169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57 10-18
16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09 10-17
16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27 10-16
16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6 10-15
165 일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3 10-15
164 하늘은쪽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16 10-13
16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14 10-13
16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9 10-12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