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짐에 대하여/ 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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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짐에 대하여
윤의섭
죽은 나무는 저항 없이 부러진다
물기가 사라질수록 견고해지고 가벼워지고
아마 죽음이란 초경량을 향한 꼿꼿한 질주일 것이다
무생물의 절단 이후는 대개 극단적이다
잘려나간 컵 손잡이는 웬만하면 혼자 버려지지 않는다
강철보다 무른 쇠가 오래 버티었다면 순전히 운 때문이며
용접 그 최후의 방편은 가장 강제적인 재생 쉽게 주어지지 않는 안락사
수평선 너머 부러진 바다와 구름 사이 조각난 낮달
나는 네게서 얼마나 멀리 부러져 나온 기억일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지만 대신 바람이 갈라지고 마는 걸
편린의 날들은 사막으로 치닫는 중이다
이쯤 되면 버려졌다거나 불구가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스스로 부러질 때가 있었던 것이고
서로의 단면은 상처이기 전에 폐쇄된 통로일 뿐이라고
둘로 나뉘었으므로 생과 사의 길을 각자 나누어 가졌다고
조금 더 고독해지고 조금 더 지독해진 거라고
부러지고 부러져
더는 부러질 일 없을 때까지 부러
진 거라고
프로필
윤의섭 : 경기 시흥, 국문학 박사, 애지 문학상, 시집 (천국의 난민)외 다수
시 감상
부러진다는 것은 본래에서 벗어났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에서, 유생물에서, 관계에서, 봄에서, 지칭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많은 부러짐을 겪다, 결국 더 이상 부러질 것이 없을 때, 더 부러질 것이 없을 것 같은데도 부러지는 것은 어쩌면 부러지고자 하는 마음 아닐까? 삶은 부러지는 일의 연속이다. 부러짐과 부러뜨림 사이에서 무한 반복을 하는 번뇌.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문득 그리워진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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