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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필사본/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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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92회 작성일 20-08-17 13:10

본문

아버지의 필사본

 

김왕노

 

 

젊은 날 친구 현우와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마루 끝에 빈 병처럼 앉아 고개 주억거릴 때

너는 아버지를 속이지 못한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영락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나는 아버지의 후속편

아버지가 이 세상에 쓰고 간 필사본 한 권인 것이다

 

살고 살다가 삶이 서럽다 못한 분서갱유의 날에

나 한 권의 필사본으로 활활 분신하고 싶은데

하나 나는 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아버지가 남긴 역작

 

펼쳐진 나를 읽고 가는 숱한 바람과 빗방울

내 행간 행간에 스며드는 햇살과 구름과 목탁 소리

갈피로 스며들어 오래 머물고 가는 꽃 한 철

 

나는 그들의 베스트셀러

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권하는 필독서 한 권인 것이다

 

[시 감상]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닮는다는 말이다싫거나 좋거나 어쩔 수없이 목소리와 외양과 삶의 방식이 판박이가 된다는 말이다나는 계보에서 영원히 자유롭고 싶었고 독불장군이고 싶었으나 결국계보 속의 다만 다른 하나가 되었다아버지의 아버지그리고 또 그 위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계보는 정직하게 기록된 삶의 푸른 문장이었다닮고 닮은 우리들이 서로 닮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퇴주잔에 담긴 맑은 소주를 음복하는 것그것이 인생이다각자의 필사본인 것이다. [김부회 시인평론가]

 

[김왕노 프로필경북 포항지리산 문학상외 다수시집[말달리자 아버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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