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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른 뿔을 세우고 / 장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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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59회 작성일 21-10-11 06:33

본문

무른 뿔을 세우고 / 장만호


어느 모진 장도리가

이 많은 못들을 죄다 뽑아놓고 갔을까

풀숲 언저리에

지천으로 널린 지렁이들

녹슬고 휜 못은 까치도 안 물어간다는데,

흔들리는 풀숲을 두고

달팽이는 또

어디로 갔나

빈 집에 깨진 자물쇠 하나 얹어두고

그 안에 적막 한 타래 감아 놓고

똑 똑,

연적에서 떨어진

몇 방울의 시간들은

어느 벼루 위에서 검게 고여 있나

무른 뿔을 세우고

어느 문장 위를 달리고 있나


* 장만호 :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2001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김달진 문학상 수상, 시집 <무서운 속도>2008 등 


#,

장도리나 못처럼 강렬하게 역진하던 때도 있었고

지렁이나 달팽이처럼 평온하게 고즈넉한 때도 있었다


강과 약의 조화는 만물의 이치, 

주역에도 양과 음은 대립하면서도 서로 돕는다 했다


장자의 양주편에 포정이 소를 잡을 때 긍경(肯莖)을 건드리지 

않고 살을 도려 낼 수 있었던 것도 무딘 칼과 부드러운 숫돌의

조화로운 만남 때문이리라


먹과 물이 벼루에서 만나 창조된 백지 위 검은 글짜  

닳고 닳은 역경 속에 무디어진 뿔 같은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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