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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회에 보낸 예수님의 첫째 편지 / 김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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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27회 작성일 22-05-28 20:09

본문

조선교회에 보낸 예수님의 첫째 편지

금강경의 어법을 본따서


착하고 착하다 안드레아여.

내가 사랑하는 조선땅의

선남자 선여인들에게 이 편지를 띄운다.

네 생각이 참으로 옳도다.

그래, 나는 집도 없이 떠도는 나그네 떠돌이란다.

그 옛날 바울로가

빌립비의 선남자 선여인들에게 들려주던 얘기가

새삼 귀에 쟁쟁한 요즈음이다.

우주만물의 근원이신 하눌님과

본질에 있어 같은 내가

오히려 장돌뱅이 떠돌이 거렁뱅이 신세로

자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나를 비우고 또 비워 공즉시색이라

천지간 삼라만상 뭇 중생이 나를 주님이라 일컬어

하눌님을 찬양하였다고 바울로가 말했던 것,

너도 물론 기억하겠구나.


떠돌이인 이 몸이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땅끝까지 순례하면서 선남자 선여인들 만나

인생길 떠돌이길 순례길에 같이 가자 불렀더니

조선반도에서도 착한 백성들 고생길 순례길에

많이는 따라왔었지. 눈물나게 기쁘고 고마웠으니라.

그런데 말이다, 착하고 착한 안드레아여,

내가 처음 조선땅 용인에 있는 천주교 묘지를 찾아보고

참으로 많이는 가슴이 아팠느니라.

부잣집 무덤은 웅장하고 가난뱅이 무덤은 보잘것없는

여느 공원 묘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더구나.

신부들의 묘지 또한 어째서 그리 크더냐.

옛날 임금의 능처럼 거만하게 솟아오른

주교들의 무덤은 또 그게 무슨 꼴이냐.

참으로 민망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들꽃처럼 숨어살다 겸손히 묻혀 있는 수녀들의 묘지들만이

겨우 내 체면을 살려주고 있더구나.

착하고 착하다 안드레아여, 네 생각이 어떠하냐.

얼마 전 입적한 성철의 죽음을 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더냐.

연화대 불길 속에 미련없이 사라진 그에게

무덤이란 게 무슨 소용이겠느냐.

탁발하며 떠돌던 나에게도 무덤은 없다.

아리마테아 사람 요셉이

깨끗한 고운 베로 내 주검 휘감아서

자기가 죽으면 묻히려고 준비했던 무덤을

잠시 빌려주었기로, 거기 한 사흘 머물다가

거기도 과분하여 그냥 나와버렸다.

세상 살 때 떠돌이로 번뇌의 그 깊은 발자국마다

여래의 씨앗들 싹 틔우는 길 찾아

마음 비우고 살았는데 무덤인들 못 비우겠느냐.


실로 김대건 안드레아여, 옛날 금강경이 전하는 부처의 말마따나

나 같은 떠돌이를 따라 순례길에 나선 구도자인 너희들에게는

발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생각조차 남기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나를 믿고 따르는 조선땅의

고맙고 고마운 선남자 선여인들이

큰 아파트 좋아하듯

커다란 무덤 좋아하는 것

나도 잘 안다.

새남터 캄캄한 하늘 아래

나 때문에 목 잘려 붉은 피 쏟은 네가 자란 땅,

그 옛날 서라벌 청청 하늘

우윳빛 하얀 피로 물들인 믿음의 아들 이차돈이 살던 땅,

내가 사랑하는 그 땅의 선남자 선여인들 잘 일깨워

빈 무덤의 깊은 속뜻 알리려면

너희들이 먼저 본보기를 보이거라.

착하고 착하다 안드레아여, 네 생각이 정녕 어떠하냐.


정처없는 순례길

지난밤 머리 뉘었던 미리내 근처 어느 길목

빈 무덤 뒤로 하고 새벽길 나설 때

때로는 풀잎 끝에 잠시 쉬는 떠돌이 빗방울 만나

시냇물 따라 함께 지줄지줄

나무뿌리 돌뿌리

뭇 중생 먼지 묻은 발가락도 멀겋게 씻겨주고

색즉시공 공양하며 떠도는 황혼녘

연꽃 봉오리에 바람 건듯 일어선다.

윤회의 수레바퀴라도 슬쩍 밀어보고

너와 나 또 떠나자꾸나

착하고 착하다 안드레아여, 네 생각이 정녕 어떠하냐.


창비1998 김영무[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감상평 : 위의 시는 예수의 가르침을 시로써 표현하였다

예수께서 가르침에 실패했기로 민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 민망하였더라면 그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에 불과할 것이다

예수의 업적을 시로써 가리우지 않고 좋은 예시로 남기지 않는다면 어찌 무례가 아닐까

재미있게 읽었으나 즐겁게 감상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시인으로서 무덤에 묻히더라도 이름자 새기는데 연연하지 말자"

이것이 독자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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